선동열 KIA 감독과 이만수 SK 감독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10월 4일 정규 시즌 종료를 하루 앞두고 KIA 관계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핵심은 선동열 KIA 감독의 거취였다. 야구계엔 시즌 말미부터 ‘KIA가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의 책임을 물어 선 감독을 경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다. 일부에선 ‘자존심 강한 선 감독이 스스로 옷을 벗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선 감독의 하차설이 제기된 건 9월 초부터였다. KIA는 6월 27일부터 9월 1일까지 41경기를 치르는 동안 11승 30패로 몹시 부진했다. 더 놀라운 건 41경기 동안 연승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이 기간 KIA는 5위에서 8위로 떨어졌고, 이 흐름은 시즌 종료까지 계속 됐다.
원체 경기 내용이 좋지 않고, 벤치나 선수들이나 약속이라도 한 듯 무기력한 플레이를 선보이자 야구계 일각에선 “선 감독이 사령탑직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선 감독은 “부상 선수가 많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할 뿐 자신의 거취에 관련해선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즈음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모그룹이었다. 모그룹은 KIA의 부진 원인을 소상히 파악했다. 10월이 되자 그룹의 움직임은 더 기민해졌다. 일각에선 “모그룹이 나선 만큼 어떤 의미에서든 선수단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을 제기했다.
실제로 선 감독은 시즌 종료 시까지 구단으로부터 재신임과 관련한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 선 감독은 지인에게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가 잡혀 있던 10월 4일 오전, 구단은 선 감독 대신 이순철 수석코치를 비롯해 박철우, 조규제, 김평호 코치에게 재계약 포기를 통보했다. KIA 선수단엔 “감독은 살아남고, 4명의 코치가 팀 성적 책임을 뒤집어쓰고 나가게 생겼다”며 “넥센과의 최종전이 끝나고 통보해도 늦지 않을 텐데, 어째서 경기를 앞두고 그런 통보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다면 어째서 선 감독은 살아남고, 4명의 코치가 희생양이 된 것일까. KIA 관계자는 “‘이번만은 감독 임기를 지켜야 한다’는 구단 수뇌부의 강력한 요청을 모그룹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구단 단장, 사장님이 모그룹에 ‘팀 성적 저하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만약 선 감독을 경질하면 KIA는 툭하면 감독을 자르는 팀이란 오명을 듣게 된다. 선 감독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자’고 강력하게 요청했다”며 “모그룹에서도 선 감독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고, 지역 영향력을 고려해 경질 대신 재신임 쪽을 선택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감독직이 위태로웠던 건 이만수 SK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독이 경질설에 시달린 건 SK의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야구해설가는 올 시즌 이 감독의 처지를 ‘사면초가’로 표현했다.
“이 감독은 사면초가 신세였다. 프런트와 관계가 좋지 못했고, 선수들과의 불화설에도 시달렸다. 여기다 팬들로부터 끊임없이 ‘김성근 감독을 쫓아낸 장본인’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부상 선수가 속출하면서 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선 감독은 전통적 동향의 지지 세력들이 뒤를 받치고 있기라도 했다. 그러나 대구 출신의 이 감독은 그마저도 없었다. 그래선지 시즌 중반부터 경질설에 시달려야 했다.
한창 KT가 초대 감독을 물색하던 7월. KT는 SK 2군 지도자를 감독 후보로 점찍었다. 하지만, 이 지도자가 KT가 제안한 감독 면접을 정중히 거절하며 없던 일이 됐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야구계로 퍼졌고, “믿는 구석이 있으니 안 간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여기서 믿는 구석은 SK의 차기 감독 보장설이었다. 정작 이 지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기 역할에만 충실했다.
9월엔 SK 모 코치의 차기 감독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소문의 진상은 이랬다. 모 코치가 “내가 SK 차기 감독에 선임됐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 코치는 “당치도 않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감독 경질설이 탄력을 받은 건 10월 초였다. 당시 야구계의 믿을 만한 소식통은 “조만간 이 감독이 경질될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그는 “SK가 차기 감독으로 모 전직 감독을 내정한 것 같다. 최근 구단 수뇌부가 재야의 한 야구인을 만나 ‘차기 감독으로 누가 내정됐으니 네가 코치로 도와 달라’고 제안했다”며 “모그룹에서도 이 감독 경질을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10월 10일 SK는 항간의 갖가지 소문과 억측을 의식한 듯 “내년 시즌에도 이 감독이 SK 사령탑으로 팀을 지휘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 감독 경질설이 진화되는 순간이었다.
SK 고위 관계자는 “이 감독의 거취와 관련해 구단 차원에서 많은 고민을 한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룹 회장님이 유고 중인 상황과 모그룹의 최종 결정이 재신임으로 나오고, 이 감독이 팀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로 이끈 성과 등이 종합 고려되면서 ‘임기 보장’으로 최종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KIA가 구단 프런트가 나서 선 감독을 살렸다면, SK는 모그룹이 이 감독을 구해낸 셈이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