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중국인들은 한끼 식사에도 5천4백90만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밥값’으로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최고급 요리는 최근 중국 산시성의 한 식당이 내놓은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는 황제 코스요리. 이 희귀 요리 가격이면 아프리카에서 하루 식비 7백원씩 계산해 1만명이 일주일 동안 끼니를 ‘떼울’ 수 있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중국인들. 그런 사람들이 중국요리의 최고봉으로 떠받드는 것이 바로 ‘만한전석’이다. 과연 이 요리는 어떤 것일까. 우리도 만한전석으로 ‘눈요기’나 한 번 실컷 해보자.
만한전석은 만주족과 한족의 음식문화가 혼합되어 이루어진 중국요리의 정수다. 이 요리는 원래 청나라의 통치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일개 북방민족에 불과했던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이 ‘얼떨결에’ 중국을 통일해 청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소수파인 만주족이 중국의 주류인 한족을 통치하기는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한때 원나라가 한족 차별정책을 펴다 멸망했기 때문에 청나라는 만/한공동경영을 제 1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 산물로 나온 것이 만한전석이라는 황제 특별요리였다.
원래 만주족은 유목민족답게 육류중심의 간단한 요리를 즐겼고 한족은 야채와 생선을 위주로 하는 요리를 주로 먹었다. 그런데 두 민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가지 맛을 동시에 즐기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 최고의 미식가로 손꼽히는 청나라 제 6대 건융황제 시절 만한전석이 탄생하게 된다.
건융황제는 각지를 순회하면서 각 지방의 요리를 감상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요리사들을 베이징으로 데리고 왔다. 그 가운데 양주(楊州)의 요리사가 만주족이 좋아하는 사슴과 곰 등의 야생짐승의 고기와 한족이 즐기던 어패류, 야채의 산해진미를 ‘섞어서’ 만들어낸 만찬요리가 만한전석인 것.
하지만 청나라가 1912년에 멸망하자 이 요리도 급속하게 쇠퇴해버렸고 전문요리사의 계승도 끊어졌다. 그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각계의 고증을 거쳐 홍콩이나 대만에서 만한전석을 재현하게 됐다.
이번에 중국 산시성의 한 식당에서 만든 요리는 5천5백만원을 호가하고 있지만 ‘싸게’ 먹는다면 대체로 6백만원 정도면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등지에서 무역업에 오래 종사해온 K씨는 “중국인들에게 먹는 것은 곧 삶이다.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는 만한전석을 먹어보기 위한 계모임도 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수백만원씩 불입해야 하고 그 음식을 먹기 위하여 휴가를 낼 정도이지만 만한전석은 그들에게 ‘꿈’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차례에 나오는 음식은 네 개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세트마다 주된 요리 하나에 네 개의 보조요리가 딸려나온다. 그러므로 한 차례에 20여 가지의 주요리와 보조요리가 나오게 되는 셈. 여기에 추가되는 찬 음식, 건과류, 꿀전병(蜜餞), 간단한 음식(點心), 과일까지 합치면 한 차례에 나오는 요리는 모두 30~40가지.
결국 사흘에 걸친 연회에는 모두 1백80여 가지의 요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워낙 광대한 규모이다 보니 만한전석 연회를 즐기는 방법도 특이하다. 먼저 손님이 연회장에 들어가면 겉옷을 벗고 얼굴을 씻은 다음 차를 마시면서 간단한 점심(點心)을 먹는데 이것을 ‘도봉’(到奉)이라고 한다.
도봉이 끝나면 다시 차를 마시고 호도 따위를 먹으면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이때는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주위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감상하기도 한다. 테이블 위에 다시 온갖 과일과 볶은 은행알, 연꽃씨 따위가 올라온다. 이때를 ‘대상’(對相)이라고 한다.
그뒤 손님들이 자리에 앉으면 먼저 과일이 나오고 찬 고기안주와 함께 술이 나오는데 술은 여러 종류가 있어 각자 취향대로 마실 수 있다. 보통 알콜도수가 약하고 부드러운 소흥주(紹興酒), 그중에서도 화조(花雕)를 마신다.
계속 찬 고기요리 모듬과 더운 고기요리를 안주로 해 술을 마신다. 이렇게 하여 네 번째 상까지 끝나면 다섯 번째 상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밥 죽 탕이 중심이다. 이것도 끝나면 조그만 은 접시에 이쑤시개, 빈랑(檳)나무 열매 따위가 나온다.
음식을 모두 먹은 뒤 다시 한 번 얼굴과 손을 씻고 나면 연회가 끝나는데 여기까지를 ‘빈수’(檳水)라고 한다. 만한전석 연회는 이 같은 식으로 점심과 저녁, 그리고 밤에 걸쳐 하루 코스로 끝내기도 하고 하루 두 번씩 사흘에 걸쳐 진행되기도 한다.
이번에 산시성에서 만든 5천5백여만원짜리 만한전석은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1시까지 ‘약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만한전석에 쓰이는 재료들 중엔 이른바 ‘몬도가네’식 음식이라 할 만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원숭이 입술, 원숭이 골, 성성이 입술(猩脣), 코뿔소 꼬리, 사슴 힘줄, 표범의 태아, 백조, 공작, 거북, 대나무 벌레 등. 이밖에 사슴 애기집, 사슴고기 포, 곰발바닥, 백조, 너새, 두꺼비 따위의 들짐승과 호랑이의 고환으로 만든 청탕호단(淸湯虎丹), 사슴눈알로 만든 명월조금봉(明月照金鳳) 등도 있다.
이 모든 ‘산해진미’를 과연 모두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산’이다. 중국인들은 ‘소화제’를 음식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소화제는 차와 ‘만만디’로 압축될 수 있다. 손님들은 만한전석을 모두 맛보기 위해서 음식에 걸맞은 각종 차를 마셔 소화를 돕는다. 또 적당한 휴식을 주어서 포만감 없이 음식 맛을 느끼게 한다.
만한전석은 요리 사이사이에 탕과 면이 때를 맞추어 나오고, 간식과 요리의 배열이 알맞게 짜여져 있어 맛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자연스럽게 배를 불릴 수 있다. 술과 차도 최고급 명품으로 구미와 소화를 돋우어 식사 후에도 속이 편안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를 선보인 적이 있다. 이 호텔의 한 관계자는 “바닷가재와 불도장, 전복찜 등과 고슴도치 모양, 연꽃모양 등의 다양한 특별 딤섬요리를 내놓았다. 10개 코스 세트 메뉴에 16만∼23만원이었고 일품요리는 6만5천∼32만원까지 가격이 다양했다. 예상과 달리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중국요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함을 느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