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수행하는 경제사절단 구성을 둘러싸고 ‘사절단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박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 당시 수행 경제사절단과 조찬 간담회를 갖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유독 눈길을 끈 것은 김홍진 KT G&E부문장(사장)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석채 KT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시점이어서 동행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KT 관계자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기 전 산업부에서 동행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럽지역이 KT의 주요 해외사업 대상지이고, 특히 프랑스 리옹의 스마트도시 개발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이 회장이 지난 7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수행했지만 국빈만찬에서 배제되고 9월 베트남 순방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제외되며 사퇴 압박을 받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번에도 ‘실무형’이라는 사절단의 성격이 이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회장들과의 청와대의 관계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경제사절단 구성은 산업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기업들의 참여 신청을 받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9월), 인도네시아(10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 이전 경제사절단 구성은 대표적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창구 역할을 했다. 이 방식이 역대 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오래된 관행이었다.
박 대통령의 첫 해외방문이었던 미국(5월, 전경련)과 두 번째 중국(6월, 대한상의) 방문에선 두 단체가 각기 주재사무소를 두고 있는 대표성을 고려해 각기 나눠 경제사절단 구성을 주도했다. 물론 그 때에도 청와대가 두 경제단체의 명단 초안을 받아 선별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그 사절단 구성 자체를 정부가 주도하고 청와대가 최종 결재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보다 직접적으로 ‘사절단 정치’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경제사절단의 참여를 통보받는 청와대의 초청장이 정권과 해당 기업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 입방아의 첫 대상은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바뀐 포스코와 KT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기관 수장들과 함께 공기업으로 출발한,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원죄 때문에 두 회장의 거취가 주목을 받아왔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의 경우 상반기부터 청와대가 사퇴 압박을 넣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정 회장은 박 대통령의 미국, 중국 방문 때에는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 8월 박 대통령과 10대그룹 회장단의 청와대 오찬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이를 기업별로 직접 연락한 산업부는 “순수 민간기업 회장들과 만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후 포스코에 대한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정 회장에 대한 사퇴압박이 본격화된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그 분위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사절단 포함 여부는 기업사정에 대한 신호로도 해석된다. 방미 경제사절단에는 10대그룹 회장 가운데 이재현 CJ그룹 회장만 빠졌다. 손경식 당시 대한상의 회장이 CJ그룹의 대표도 겸한다는 분위기였지만, 시장에선 이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이어 이 회장과 CJ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검찰 수사가 진행돼 결국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으로, 전경련 회장까지 지낸 유력 경제인이지만 박 대통령 방미 때 경제사절단으로 초청받지 못했다. 이에 “곧 손보기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조 회장은 중국 방문 때에는 포함됐지만 베트남 방문에선 다시 빠졌다. 효성은 베트남에 지난 6년간 1조 원 가까이 투자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경제사절단에서 제외되자 재계에선 “곧 효성에 대한 사정이 시작될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했다. 실제 효성은 탈세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제사절단 참여는 기업인들 간에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좀처럼 기를 못 펴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은 현 정부 들어 활발하게 박 대통령을 수행했다.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은 패션부문에서는 유일하게 이번 유럽순방까지 5번이나 경제사절단에 모두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형지와 최 회장이 현 정부와 밀월관계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시샘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