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같은 날, 공교롭게도 김대중 주필 등 조선일보 임원 22명이 회사로부터 4억6천7백만원의 돈을 빌렸다. 이들 임원들이 이 날 빌린 돈은 ‘종업원 대여금’이라는 명목으로 장부에 기록됐다.
#3. 95년 12월 30일, 김 주필 등 임원들은 과거에 빌렸던 돈을 전부 갚았다. 회사는 장부상에 방 회장이 회사에 빌려준 돈 5억7천8만원과 김 주필 등이 회사에서 빌린 4억6천7백만원을 상계처리했다. 다시 말해 김 이사 등은 회사에서 돈을 빌려 곧바로 방 회장에게 갚은 셈.
이상의 내용은 조선일보사가 조세불복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국세청과 국세심판원 등의 결정문에 명시된 내용이다. 이같은 기록을 보면 방 회장의 예수금 잔액 1억여원이 회사에 남아 있을 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 방 회장은 여윳돈을 회사에 맡겨뒀고 임원진 22명은 급전이 필요해 회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방 회장에게 직접 갚은 셈이다.
▲ 방 회장과 조선일보, 그리고 임원들 간에 이뤄진 ‘내부 삼각거래’의 흐름을 짚은 국세청 세무조사 문건. | ||
이번에도 95년과 마찬가지로 장부상에는 3억원을 맡겨 둔 방 회장에게 직접 갚은 것으로 기록됐다. 2년째 방 회장이 회사에 돈을 맡기고 임원진이 회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이상한 거래’가 계속된 것이다.
그리고 이 거래는 1년 더 이어졌다. 이듬해인 97년, 이번에도 1월 16일이었다. 임원진이 2억여원을 빌리고 방 회장도 2억여원을 다시 맡겼다. 연말 회계처리도 같은 방법으로 이뤄졌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방 회장은 95년부터 97년까지 3년 동안 총 9억7천여만원의 거액을 해마다 연초에 회사에 맡겼다가 연말에 임원들로부터 ‘회사 빚’ 명목으로 되돌려 받았다.
김대중 주필 등 임원들도 때를 맞춰 같은 액수의 돈을 회사로부터 빌렸다가 방 회장에게 직접 갚았다. 방 회장이 3년동안 누적된 예수금 중 일부를 실제 현금으로 찾은 것은 98년 12월28일이었다. 방 회장은 이 날 현금 2억원을 회사 통장에서 인출했고, 이튿날 3억7천8만원을 추가로 찾았다.
이틀에 걸쳐 방 회장이 인출해 간 금액은 5억7천8만원. 이 금액은 지난 95년 1월 방 회장이 처음으로 회사에 맡긴 것으로 돼 있는 입금 전표에 찍힌 액수와 동일했다. 결국 이 부분에 대해 국세청은 조선일보의 장부에 기록된 예수금 9억7천여만원 전체에 대해 ‘가공 부채’라고 결론을 지었다.
가공부채라 함은 실제 부채가 없었음에도 부채가 있었던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것으로, 일부 기업에서는 경영인의 비자금 조성 등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은 이같은 이유를 들어 조선일보가 임원들에게 빌려준 돈을 회사의 자산으로 간주하고 인정이자 및 법인세 등 탈루세액 4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자료에서 “95년 1월20일 입금 내역을 확인한 결과 방 회장이 현금을 입금한 사실은 없었으며 전표 상으로만 입금 처리됐다”며 “이 돈은 임원진 22명에게 가불로 대여한 것처럼 처리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방 회장의 예수금과 임원들의 대여금을 상계 처리한 것은 잘못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는 매년 결산시 행해오던 기업 회계 관행이며, 방 회장의 예수금은 회계 장부와 연말 결산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실질 부채”라고 반박했다.
이같은 논박 속에는 양측의 ‘증거 자료’에 대한 공방도 잠복해 있다. 국세청은 “예수금 발생 당시 전표나 명세서를 수 차례 요구했지만 조사 대상 연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방 회장이 예수금을 처음 발생시킨 때는 지난 94년이고 국세청의 세무 조사 대상 기간은 95년부터여서 세무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역시 국세청에 과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 회사의 경리부서 임원 A씨는 “과세를 했으면 그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임원은 “재작년 세무조사는 기업회계기준과 세무 회계의 차이를 무시한 엉터리 세무조사”라며 “너무 엉터리 조사여서 털어낼 세금이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국세청의 이같은 과세에 불복해 2001년 7월 국세심판원에 조세 심판을 청구했으며, 국세심판원은 지난해 10월 “예수금이 가공 부채로 인정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조선일보는 회계처리 내역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조선일보측은 이에 대해 “국세심판원도 국세청 출신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반박했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에 예수금 문제를 포함, 지난 95년도분 추징금에 대한 과세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조선일보의 소송제기에 대해 사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