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장면. 박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고향 사람들이 현 정권의 요직 인사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 10월 대구세계에너지총회. 그 뒷이야기가 요즘 의원회관에서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를 종합하면 이렇다. 박 대통령이 대구에 왔을 때 TK가 너무 역차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었다, 불만이 커서인지 대통령 축사가 끝났을 때 박수소리가 시원찮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고향 사람들의 자세가 삐딱했다, 박 대통령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다 등등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 중인 TK 한 인사는 “분위기가 싸했다고 하더라. 불만을 전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확인하긴 어렵지만…”이라고 전했다.
정부를 향한 TK의 이런 불만은 편애를 받는 PK를 향해서 터지기도 했다. ‘영남권 목장의 혈투’를 예견하는 이들도 있다. 여권 한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TK는 혜택은 못 받으면서 항상 공범으로 몰렸다. 영남권 독식이라고 뭉쳐 말하는데 들여다보면 모두 PK 쏠림 현상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TK가 워낙 많이 해먹다 보니 이제는 완전히 킬링필드처럼 돼 몰살당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TK 정치권이 워낙 경쟁력이 없는 데다 물렁물렁해 챙겨줄 생각도 않는 것 같다. PK가 TK를 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만큼 독식해선 안 된다.”
그는 또 “대구·경북이 밀양에 신공항을 밀고, 부산은 가덕도를 고집하면서 완전히 쪼개졌다. 필요하면 우리가 남이냐고 하지만 전시 상황이 아니면 남보다 더 한 남 같다”며 “이런 식이라면 TK는 PK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 PK는 TK 꼴 보기 싫어서 난리가 날 수 있다. 당내 지역 분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심하게는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당내 세력화에 가장 앞서 있는 김무성 의원에 대한 이야기는 TK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각종 보도사진에서 김 의원 주변에 TK 의원들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이렇다. TK에서 당권주자 하나 못 내는데 김 의원 밑에 줄을 선다면 그보다 비참한 상황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배신자 내지는 변절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까닭에서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왼쪽부터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비서실장,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
TK는 지금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절대지지로 독식구도를 만들면 지역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 국회의원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니 당에만 손을 비빌 것이고, 새누리당 간판만 달면 찍어주니 지역민을 천대할 것이란 깨달음이다. 새누리당도 찍을 수 있고, 민주당도 찍을 수 있는 지역이어야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 부산과 경남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구의 지역내총생산이 18년째 전국 16개 시·도 꼴찌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에 있었던 한 인사는 무력한 TK가 다시 서는 방안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무총리에서부터 청와대 비서실장, 사정기관장 등 PK 독식을 신 엽관제(新 獵官制)로 보고 직언해야 한다. 발톱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지지율 대통령’과 같다. 고정 지지율이 있으니 권위가 있는 것인데 이 고정 지지율은 TK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말이나 내년 초 공공요금 인상 정국이 되면 지지율은 하락세가 아니라 곤두박질 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어려울 때 순장조(殉葬組)로 TK를 찾지 말아라, 이렇게 경고해줘야 한다.”
TK는 내년 초 중폭 이상의 개각 요인이 생길 경우 뭉쳐서 대 청와대 요구안을 내자는 생각이다. 현 정부의 임기 중반 전에 TK 출신을 중용해 달라는 일종의 최후통첩성 요구다. 정부가 가장 힘이 있는 임기 초반 중용되어야지 중반 이후 중용되면 개인의 명예에만 이득이 있을 뿐 실질적인 지역 발전은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다.
박근혜급 중심추가 사라진 TK 정치권은 무주공산 상태다. 최경환 원내대표,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 있지만 아직 당권이든 대권이든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앞서의 청와대 출신 인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PK는 민원이 있으면 아예 이쪽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호남사람들은 만날 전화하고 메일 보내고 혼을 빼놓는다. 충청도 사람들은 민원 해결사를 어떻게든 찾아내 들들 볶는다. 그런데 TK는 민원이 있어 찾아온 것 같은데 부탁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점잔 뺀다. TK가 무시당하고 손가락질당하는 이유에는 내륙의 양반 기질 탓도 크다. 영원히 PK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