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톱스타>는 ‘팩션’으로 28년간 배우로 살아온 박중훈 감독의 반성문과 같은 이야기다.
극중 스타가 된 태식은 자비를 들여 영화를 제작하며 선배 배우인 안성기(실제로 안성기가 출연했다)를 섭외했다. 촬영 현장에서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태식에게 안성기는 “자네는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1993년 작 영화 <투캅스>부터 박중훈과 호흡을 맞추며 그의 전성기를 곁에서 지켜 본 안성기가 실제로 박중훈에게 던졌던 조언이다.
승승장구하던 태식이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려 이미지가 추락하고 위약금을 물다가 빈털터리가 된 후 씁쓸하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장면 역시 박중훈이 실제 걸어온 발자취다.
박중훈은 탄탄대로를 걷던 1994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며 연기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출연하던 광고 업체들은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박중훈은 자택이 가압류되는 등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태식 외에도 <톱스타>에는 실존 인물에 뿌리를 둔 캐릭터가 여럿 등장한다. 배우 김수로가 연기하는 최강철이 대표적이다. 최강철은 “본질이 아니야. 가식이야”를 입버릇처럼 외치며 주변 인물들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돌출 행동 때문에 급기야 최강철은 촬영감독과 주먹다툼을 벌이고 영화 촬영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른다.
최강철을 본 후 연예 관계자들은 배우 A를 떠올렸다. 평소에도 기행으로 주목받는 A는 종잡을 수 없는 언행으로 동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곤 한다. <톱스타>에 출연한 한 배우는 “A와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다. A는 마치 도인처럼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돌출 발언으로 리포터의 혼을 쏙 빼놓았다. 실제로 최강철과 많이 닮았다”고 귀띔했다.
톱스타 원준(김민준 분)이 태식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점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태식이 몹시 거슬리는 원준은 과거 자신의 매니저로 일했던 태식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주문한다. 일순간 주위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결국 원준이 “농담이다”고 말하며 긴장감을 풀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장면을 본 연예계 호사가들은 영화감독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던 유명 제작자를 떠올렸다. 한때 충무로의 대작들을 쥐락펴락했던 이 제작자는 한 술자리에서 자신이 제작한 영화로 데뷔한 감독 B에게 “담배 좀 사오라”고 지시했다.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중견 감독 C는 이 제작자에게 “B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너무하다”고 일침을 놓았고, 결국 C와 이 제작자의 싸움으로 번졌다.
한 연예 관계자는 “<톱스타> 속 에피소드가 A와 B 감독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이라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실제로 인기와 인지도가 역전되면서 배우 혹은 감독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관객보다는 평단의 지지를 받는 감독 D를 은근히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빈털터리가 된 태식은 <톱스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금 이 감독에게 미팅을 요청하고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린다. 인기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한 순간 사라지고 마는 신기루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D 감독 역시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려 상업 영화나 드라마 복귀가 어려운 배우들을 캐스팅하기로 유명하다. 인생의 쓴맛을 본 배우들은 난해하지만 예술성이 높은 D 감독의 작품에 출연해 국제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후 연예계 복귀에 성공하곤 했다.
<톱스타>가 공개되지 않은 연예계 비화와 SNS를 통해 떠도는 일명 ‘찌라시’ 속 이야기를 영상화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어디선가 한 번 들어 봤음직한 에피소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박중훈 감독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박중훈 감독은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것은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톱스타> 속 사건보다는 그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바뀌게 되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8년간 배우로 살아온 박중훈의 반성문과 같은 이야기인 <톱스타>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