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비롯해 주요국 국가원수급 인사를 대상으로 한 도청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 파문이 일고 있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사태를 두고 서울의 정보 소식통들 사이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사실 NSA의 역사는 깊다. 지난 1952년 창설돼 현재 3만 8000여 명의 직원이 미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에서 일한다. 한 해 80억 달러(약 8조 4800억 원)의 예산을 쓰는 미국의 ‘세계 전자정보전 기지’다.
그런데도 서울을 무대로 한 NSA의 활동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대북정보 수집을 위해 한국 정보당국과 공조를 할 수밖에 없는 CIA나 미 국방정보국(DIA)과 달리 NSA는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CIA는 북한을 바라보지만 NSA는 서울을 주시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인사, 장관이나 군 합참의장 등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핵심요인들의 동향 감시와 도청이 주목적인 만큼 한국의 정보기관과도 정보를 공유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2010년 1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용산 미군기지를 방문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 정보 소식통은 “30명 안팎의 NSA 전문 인력이 대사관 직원이나 주한미군 간부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CIA가 15명 정도의 공식요원을 파견한 것과 비교하면 비중을 알 수 있다. 정보요원은 대사관 직원으로 공식 파견하는 화이트(백색)요원, 상사원·영어강사·학생 등으로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흑색)으로 구분된다. 이 소식통은 “과거 미 대사관에 외교관으로 등록된 CIA 간부의 경우 부인까지 요원인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통칭 ‘쓰리세븐 부대’로 일컬어지는 제777부대의 장비 일부도 북한이 아닌 한국 감시용으로 쓰이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국군과 미군 전문 인력이 공동으로 근무하는 이 부대의 장은 우리 군 소장급 장성이 맡는다. 그런데도 미국 측이 절대 공개하지 않고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장비와 구역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감춰야 할 민감한 장비나 정보가 있다는 의미다. 한 정보 관계자는 “한국 측에는 제공 불가한 ‘노폰(No Foreigner)’이란 도장이 찍힌 정보는 미국만 다룰 수 있는 최고급 정보로 한국과 절대 공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감청 능력은 상상 이상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는 한·미 공조로 이뤄지는 대북감청 과정을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부 등 북한 권력 핵심부의 동향을 세밀히 포착한다. 김대중 정부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부인 고영희(김정은의 생모) 간의 통화 감청내용을 국정원 최고위급 인사가 언론인들과의 간담회 때 언급했다가 미국 측의 거센 항의를 받은 일도 있었다. 3년 전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북한 부대에 떨어지는 우리군의 대응 포사격 소리와 북한군의 긴박한 통신내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고 한다.
청와대 전경
하지만 최근에는 도청 기술의 발달로 과거 같은 고전적 수법은 쓰이지 않는다. 이번 NSA의 해외 국가원수 도청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휴대폰 통화 등을 공중에서 전파 가로채기 등으로 확보하는 방식을 쓴다. 이를 막기 위해 통화 내용을 암호화해 전송하는 비화(秘話) 전화나 팩스를 주로 쓴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사례에서 보듯 암호체계는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의 정보 관계자는 “도청과 방지기술이란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창은 늘 방패를 뚫어왔다”며 “더 무서운 건 창이 방패를 뚫을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첨단기술이 망라된 슈퍼컴퓨터와 전문 인력을 대거 동원한 NSA의 활동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NSA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학자와 언어학자를 채용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엿들을 수 있는 건 다 엿듣는다’는 말은 NSA(National Security Agency)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존재 자체를 철저하게 가리는 바람에 NSA의 약자를 ‘No Such Agency(그런 기관은 없다)’로 풀이해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NSA의 손길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도청 대상 33개국 중 한국은 ‘초점지역’으로 꼽혔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우리 외교부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오바마 행정부는 분명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내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하원 청문회에서 “외국 정상 감시는 정보활동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NSA 서울 거점의 귀와 눈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