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011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혼자 사는 노인이 급증해 ‘65세 이상 고령자 5명 중 1명은 단신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에는 단지 혼자 사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가 하나도 없는 노인, 진짜 ‘고독단신’ 노인이 늘어나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자신의 노후 모습을 그릴 때, 친구 하나 없이 고독한 생활을 할 거라고 예상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러나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전직 은행원 출신인 68세의 남성도 “노후가 이렇게 쓸쓸할 줄 몰랐다”고 토로한다.
정년퇴직을 할 때만 해도 ‘앞으로 즐거운 은퇴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매주 골프 나들이를 하는 여유로움을 즐기리라.’ 하지만 정작 함께 라운딩을 해줄 친구가 없었다. 그때 그는 처음 깨달았다. 언제나 직장이 우선이었기에 일로 만난 사람 외에는 누군가와 골프를 같이 친 적이 없단 사실을.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된 오늘날 많은 직장인들이 연고 없는 도시에서 삶의 전부인 양 직장생활에 매진하지만 퇴직하는 순간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만다. 한 예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인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30년 이상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겨우 집으로 돌아가도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고립감을 맛보는 것이다. 그 까닭에 여성보다 남성의 고독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일본의 고독사 통계를 보면,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 은퇴자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무연사회(無緣社會)를 다룬 도서 <이웃의 시대>의 저자 이치조 신조(49)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존심이 강한 탓에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게 아닐까싶다”고 추측했다.
그는 또 “사실 우리 모두는 고독사의 잠재적 위험군으로 볼 수 있다. 지금부터 다가오는 그때에 맞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균 수명 80세인 시대다. 은퇴 후 삶도 그만큼 길어졌다. 이제라도 삶의 터전이 직장에서 집 주변으로 바뀐다는 걸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SNS 사이트 화면 캡처. 이런 사이트에서는 과거 직함이나 자존심을 내세우면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
고령자들의 인맥 쌓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직함이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은퇴 후에도 여전히, 전직 ○○회사 부장 등의 직함을 내세우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는 웹상에서도 마찬가지다.
50대 이상 노년층 대상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운영하고 있는 시바타 아키라 사장은 “SNS에 ‘나는 ○○상사에서 관리직으로 오랫동안 일했고, 해외경험도 풍부하다’고 자랑하듯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고 전했다. 이보다는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현재 ○○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 이것을 계기로 이야기가 활기차게 오가게 된다.
이밖에도 고독한 은퇴자의 삶을 피하기 위해서는 동네 커뮤니티 혹은 취미생활을 연결고리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전문가는 애완동물, 특히 개를 키우는 것을 추천했다. 애견과 산책하면 운동효과도 얻을 수 있고, 공통된 관심사를 지닌 지역주민과 자연스레 대화도 나눌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은퇴 후 애견을 기르기 시작한 62세 남성은 “수십 년 만에 공원에 나가게 됐다”면서 “개를 통해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밝게 웃었다.
방송국에서 퇴직한 68세의 남성은 일주일에 3번, 구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회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두 사람은 곧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발상을 전환해 정년을 계기로 ‘새로운 땅’으로 과감히 뛰어든 사람들도 있다. 시골 생활을 동경해왔다는 65세 남성은 5년 전 작은 어촌마을로 이주했다. 낚시를 통해 친해진 친구도 생겼고, 마을 회합에도 꼬박 참석해 지인도 늘어났다. 도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농밀한 인간관계. 물론 부정적인 면도 없진 않지만, 그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항상 곁에 있어 외롭지 않으며, 시골생활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지역과의 접점이 없고, 친구도 없이 지내는 ‘고독단신’ 노인이 늘어나자, 일본 지자체는 대책 마련에 발 벗고 나섰다. 수시로 노인들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고령자의 집을 컴퓨터 네트워크로 묶어 재택 건강진단 서비스도 실시 중이다. 또 컴퓨터를 다룰 수 없는 노인의 경우 수도나 가스, 전기포트 등의 이용 빈도 송신을 통해서 안부를 확인하는 시스템 도입도 시작됐다. 이와 더불어 지자체는 독거노인들이 지역 커뮤니티에 참가할 것을 적극 권장하는 등 고독사 예방에 여러모로 고심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