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복귀작 <소원>.
하지만 글에는 감정이 없다. 이준익 감독의 농담은 감정과 뉘앙스를 쏙 뺀 채 ‘이준익 감독 은퇴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됐고, 이준익 감독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으니 지켜야지”라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은퇴 선언’을 했던 이준익 감독은 아동 성폭행을 다룬 <소원>의 이야기에 매료돼 영화계로 복귀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비슷한 시기에 다시 대중 앞으로 돌아온 이가 또 한 명 있다. 다름 아닌 임창정. 배우로는 꾸준히 활동해왔지만 ‘가수 임창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2003년 공식 은퇴를 선언했던 임창정은 2009년 한 차례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다시금 3년 동안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리고 2013년, 임창정은 그의 가수 시절 전성기를 함께했던 NH미디어에 다시 둥지를 틀고 가수로서 재도약을 시작했다.
임창정과 NH미디어의 재회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2003년 가수로서 전성기를 보내던 임창정은 “당시 연기하다 끌려가서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다 끌려가서 연기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 모두 불량품 같아서 하나만 열심히 하고 싶었고, 그게 연기였다”고 밝혔다.
물론 임창정의 독단적인 선택을 회사 입장에서 무작정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소속 아티스트의 입장을 존중한 회사는 “향후 어디에서도 가수로 활동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임창정의 뜻을 수락했던 것이다. 10년 만에 옛 소속사로 돌아와 가수로 컴백하는 과정에서 망설이는 임창정을 다독인 건 절친인 가수 김창렬이었다. 술을 한 잔 마신 후 노래를 부르던 임창정을 바라보던 김창렬은 “할 수 있을 때 질끈 감고 노래하라”고 격려했고 임창정은 다시 무대 위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임창정은 최근 자신의 시계를 마치 10년 전으로 돌린 듯 자신과 비슷한 선택을 한 후배와 마주했다. NH미디어에서 임창정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멤버 동호가 그 주인공이다.
10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한 NH미디어 대표는 공교롭게도 임창정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임창정은 “동호가 탈퇴하기 전 소속사 사장님이 ‘걱정이다. 동호가 팀에서 탈퇴를 할 것 같다’고 하시며 ‘뭐, 어쩌겠나. 아이가 지쳐 있는데’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동호는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소속사는 붙잡지 않았다. 열다섯이란 어린 나이에 데뷔해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지치고 다친 동호를 무작정 끌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동호의 행보를 의아해하는 이도 많다. 지금도 수많은 연습생들이 데뷔하기 위해, 데뷔한 이들은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치며 당당히 스타덤에 오른 동호가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정을 한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가까이서 아이돌의 생활을 지켜 본 연예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불을 좇는 불나방처럼 연예계에 투신했지만 성향이 맞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동호 외에도 걸스데이의 지해, 에이핑크의 홍유경, 원더걸스의 선미 등이 소위 ‘잘나가던’ 팀에서 탈퇴하거나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소속사 차원의 결정인 경우도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이 결코 행복한 일은 아니다. 유명해질수록 기본권 제한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환멸을 느끼고 연예계를 떠나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화려한 과거가 그리워 연예계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과거의 명성에 비해 다른 소속사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속 아티스트들이 임의 탈퇴나 은퇴 의사를 밝히면 ‘향후 연예 활동 전면 금지’라는 각서를 받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연예인들이 은퇴를 선언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결혼’이다.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결혼과 동시에 연예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가사에 전념한다. 여전히 복귀를 바라는 연예인 1위로 꼽히는 심은하를 비롯해 배우 서민정 신애 등이 결혼 후 사실상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배우 사강이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이 미국 지사로 발령나면서 내린 결정이다.
이 외에도 걸그룹 클레오 멤버였던 공서영은 현재 KBS N 스포츠 아나운서로 전업에 성공했고 쥬얼리의 원년 멤버였던 정유진은 은행원으로 살고 있다. 방송인 정형돈과 결혼한 한유라 역시 한때 배우와 CF모델로 활동했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자의 혹은 타의로 은퇴나 탈퇴를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준익 감독이나 임창정처럼 돌아오는 이들도 있지만 몇 차례 복귀에 실패해 조용히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