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증. ‘8인회’는 사법 연수원에서 시작됐다. | ||
노 대통령을 제외한 7명 멤버 중에서 이번 인사에 내정 또는 거명된 사람은 모두 3명. 상황이 이렇다보니 검찰 안팎에서는 8인회 회원들이 대통령의 검찰 인사 과정에 자문역을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8인회’는 과연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친위대’일까.
8인회는 이름 그대로 모두 8명의 멤버로 구성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정상명 법무부 차관 내정자, 이종백 검사, 이종왕 강보현 변호사, 서상홍 헌법재판소 사무차장 등이다. 나머지 2명의 멤버는 판사로 재직(본인들이 이름을 밝히길 거부하고 있다)하고 있다.
이들이 친해진 계기는 1975년 사법 연수원 연수 당시 강의실 좌석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당시 연수원 강의실의 좌석배치는 17회 사시 동기 58명 중에서 나이가 많은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겨 강의실 앞자리부터 앉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강의실 자리가 가까운 사람이 연배도 비슷해 친해지기가 쉬웠다는 설명이다.
“연수생 번호가 44번이었다”는 신건수 서울고검 검사는 “나는 뒤쪽 자리에 앉아서 노 대통령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었다”고 말했다. 한 줄에 7명씩 앉도록 되어 있는 강의실에서 연수생 번호 14번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두 번째 줄 맨 가장자리에 앉았다.
서상홍 사무차장은 “당시 내가 21번이어서 노 대통령의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고 말했다. 서 사무차장은 “(모임 멤버들은) 나나 노 대통령 자리 근처에 앉았던 사람들 7~8명”이라며 “서로 형님 동생으로 불러가며 식사하고 당구를 치거나 카드놀이를 하면서 친해졌다”고 말했다.
▲ 정상명 법무부 기획실장(왼쪽)이 법무부 차관에 내정되면 서부터 ‘8인회’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른쪽은 이종왕 변호사. 우태윤 임준선 기자 | ||
‘문제’는 이 모임의 멤버들 중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 회원들 중 상당수는 법조 인사에서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지금의 상황이다.
‘8인회’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정상명 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이 법무부 차관에 내정되면서부터. 정 실장의 내정 소식을 접한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사실상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검찰 조직을 재구성하겠다는 게 아니겠느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정 실장에 이어 ‘8인회’ 모임의 일원인 이종백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서울지검장으로 이름이 나왔고 이종왕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장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이종백 부장은 애초에 대검 차장으로까지 거명됐으며 다시 ‘대검 차장은 아니고 ‘빅4’ 중의 한 자리를 맡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이번 인사에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렸다. 검찰 조직의 ‘빅4’는 대검 중수부장·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의 요직이다.
대검의 한 고위 인사는 “대통령이 검찰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그 전위대로 강금실 장관을 보낸 것 아니냐”며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친목 모임 인사들 이름이 자꾸 언급되는 것은 누가 봐도 오해의 소지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관계자 역시 “내부의 동의 없이 외부에서 사람을 찍어서 내려보내고 그 사람에 의해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어찌됐건 불쾌한 일”이라며 “그런데 그 사람이 대통령 친목모임 인사라면 검찰 내부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상명 차관 내정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으며 지난 8일 장남 결혼식장에서 만난 이종왕 변호사 역시 ‘그런 게 아니다’ ‘사실과 다르다’는 말로 이 같은 시선을 피해갔다. 이종백 부장은 이 같은 사실을 묻는 기자들에게 “친한 연수원 동기들끼리 모임을 갖는 정도”라며 “이번 인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강보현, 서상홍, 이종백 | ||
강보현 변호사 역시 “이제 그만 하자. 8인회라는 이름도 언론이 지어준 것이다.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대통령께 폐가 된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대통령이 (인사를) 그렇게 할 분도 아니고 이번 검찰 인사 역시 사적인 인연에 연연하는 구습을 버리자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강 변호사는 또 “정상명 실장은 강금실 장관의 주변 참모들이 마땅한 사람을 찾다가 내정하게 된 사람이고 이종왕 변호사는 워낙 검찰 내에서 신망이 두터워 예전에도 승진 인사에 거론됐던 사람”이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청와대도 8인회 멤버 중용설에 대해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7일 문재인 민정수석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사시 동기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터무니없는 말이다. 사시 17기가 차관으로 내정됐기 때문에 고검장 승진대상은 16기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법조계 인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8인회 멤버들이 고속 승진을 할 것이라는 관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8인회 멤버들이 이번 인사에서 중용되지 않더라도 법조계 인사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
물론 ‘8인회’의 회원들은 이 같은 주변의 시각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서상홍 사무차장과 이종왕 강보현 변호사는 한결같이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단 한 통의 전화 통화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8인회’ 멤버는 아니지만,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17회 출신들 역시 이번 검찰 인사를 두고 혹시 불거질지 모를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몸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17회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구충서 변호사는 “(대통령과) 사시 동기로서 어떤 얘기를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것은 기존 검찰 조직의 인사들은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같은 기수의 신건수 검사는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입장에서 이번 인사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정인봉 변호사는 “후배가 윗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선배들이 모두 옷을 벗는 것은 더 이상 검찰의 아름다운 전통일 수 없다. 인간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닌 이상 선배로서 오히려 도와줘야 할 몫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