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7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강금실 장관(왼쪽)과 추미애 의원. 이제 그들은 좋든 싫든 강력한 ‘라이벌’이 돼버렸다. 시사저널 | ||
최근 여의도 정가에 ‘강추’바람이 불고 있다. 흔히 ‘강추’란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강력 추천’의 약어로 통한다. 그러나 정가 인사들이 입에 올리는 ‘강추’는 강금실 법무장관과 추미애 민주당 의원을 엮는 라이벌 구도를 의미한다. ‘강-추’구도는 ‘양김’으로 지칭되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결 양상 이후 가장 관심을 끄는 라이벌 구도로 거론될 정도다.
노무현 정부 들어 가장 주목받는 장관으로 지목돼 온 강 장관은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 계속되는 러브콜에도 손사래를 쳐왔지만 그녀를 향한 열린우리당의 구애는 식을 줄 모르는 상태. 추 의원은 얼마 전 조순형 대표와 접전 끝에 당대표 경선 2위를 차지하면서 차기 당 리더로서의 입지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강-추’의 부상을 두고 일각에선 차기 대권을 놓고 두 여성지도자가 사상초유의 ‘우먼파워’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는 성급한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추 의원은 강 장관을 라이벌로 간주하는 발언을 해 세간의 흥미를 돋우기도 했다.
최근 차기 지도자감을 묻는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강 장관과 추 의원은 중·상위에 랭크돼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차기 여성지도자감으로 주목받는 두 사람의 ‘라이벌’적 측면들을 심층 해부해본다.
[1.라이벌로 엮은 이는 DJ]
정가에선 강 장관과 추 의원을 라이벌로 엮은 ‘당사자’가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총선을 앞두고 DJ가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행보가 절묘하게 엇갈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추 의원은 DJ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15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 공천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돼 정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DJ측이 추 의원보다 먼저 ‘눈독을 들였던’ 여성 인사는 바로 추 의원의 사법연수원 1년 선배인 강 장관이었다. 당시 여성 법조인 영입을 맡았던 유선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변호사였던 강 장관이 전 남편의 빚 때문에 도저히 정치를 하기 어렵다며 거절해 영입이 무산됐다”고 전했다. 이후 16대 총선에서도 DJ측은 강 장관 영입을 추진했지만 강 장관이 다시 거절해서 강 장관 몫의 공천이 조배숙 의원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강 장관 대타’로 정계에 입문한 추 의원은 그러나 DJ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국민회의 부대변인, 김대중 총재특보 등을 거치게 된다. 추 의원에 대한 DJ의 ‘애정’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얼마 전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 때 DJ는 4당 대표를 제외하고는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추 의원만을 공식 초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2.러브스토리도 막상막하]
초유의 여성 지도자 라이벌 구도가 신선한 탓일까. 강 장관과 추 의원의 정치적 행보 못지 않게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도 곧잘 비교되곤 한다. 두 사람에겐 각자 남편과의 ‘남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 왼쪽은 지난 3월 입각 초기인 강 장관과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오른쪽은 정치 초년병 시절의 추 의원과 DJ. | ||
남편 서 변호사의 법률사무소가 전북 정읍에 있어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추 의원이 남편이 보고 싶을 때면 한밤중에도 정읍에 내려갔다 올 정도로 좋은 애정관계가 유지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 장관도 서울대 법학과 재학시절 ‘운동권’이던 전 남편 김태경씨(‘이론과 실천’ 대표)를 만나 4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학창시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던 김씨는 지난 88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발간한 혐의로 다시 구속됐는데 당시 두 사람의 애정을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시절 판사였던 강 장관이 남편을 위해 불이익을 무릅쓰고 구속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던 것.
그러나 강 장관은 3년 전 남편 김씨와 이혼해 16년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했다. 김씨가 출판사에 이어 여행사까지 사업을 확장하다 지난 95년 부도를 낸 것이 이혼의 단초가 됐다. 이후 김씨는 자신의 빚을 아내가 떠맡게 된 현실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2000년 합의이혼을 택했다고 한다. 이혼은 강 장관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워했던 김씨를 위한 강 장관의 배려 성격이 짙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혼 이후에도 두 사람은 이따금씩 만나 ‘부부 못지않은’ 우정을 나눈다고 한다.
[3.부처님 마음은?]
강 장관과 추 의원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지난 11월26일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은 ‘여성불자 108인’ 선정 축하행사를 개최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 거물들이 자리한 이 행사에 정·관계 여성 인사로는 강 장관과 추 의원이 유일하게 108인에 선정돼 초대를 받았다.
추 의원은 대학시절 고시준비를 하며 주로 한적한 사찰을 이용했다고 한다. 공부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주된 연애 장소도 사찰이었다고. 고시준비를 위해 사찰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 이따금씩 서로가 머물던 사찰을 찾아 위로를 하며 애정을 나눴다는 것. 추 의원은 국회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된 지난 96년부터 조계종 환경보존위원직을 맡아 불교계 내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 장관 역시 〈불교신문〉이 강 장관 입각 당시 ‘노무현 정부 첫 내각 중 유일한 불자’란 타이틀로 기사를 다뤘을 정도로 ‘독실한 불자’다. 지난 6월에는 진관 스님을 주축으로 한 각 종교계 인사들이 강 장관을 찾아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건의를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엔 기독교 등 다른 종교계 인사도 함께했지만 불교계 인사들과의 교감 덕에 면담이 쉽게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강 장관의 불교와 관련된 대외적 활동은 추 의원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원래 대학시절부터 탈춤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에 대한 열정을 보였던 강 장관은 판사 시절인 85년부터는 승무에 푹 빠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는 상태로 알려진다. 이 시절 깊어진 불교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강 장관이 향후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 경우 추 의원과 벌일 ‘불심 잡기’ 경쟁 역시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4.소주와 폭탄주의 대결]
강 장관은 대학시절부터 웬만해선 술자리를 마다하는 법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평소 즐겨 마시는 술은 소주. 변호사 시절엔 법조계에서 애용하는 폭탄주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9월 법무부-검찰 갈등설이 불거졌을 때 송광수 검찰총장과 폭탄주 회동을 마치고 나와 분홍빛으로 변한 얼굴을 보인 일은 아직도 세인들 사이에 오르내리고 있다.
항간에는 ‘여걸’로 불릴 만큼 주량도 제법 상당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강 장관과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한 시인은 “술자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량이 센 편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 지난 11월28일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추미애 의원. 오른쪽은 지난 6월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강금실 장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5.추미애의 '여성적' 변화]
리더십이 강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데 능하다는 측면에서 강 장관과 추 의원은 모두 ‘당찬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은 지극히 다르다는 평이다.
강 장관은 여성적인 면을 많이 활용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화려하고 파격적인 의상과 화장으로 여성미를 뽐낸다. 다른 여성 공직자들에 비해 화장도 진하게 하는 편이다. 국회 대정부질문 같은 부담스러운 행사에도 강 장관은 화려한 액세서리 치장을 빠뜨리지 않으며 바지정장보다는 치마를 선호한다.
말투에서도 여성미가 느껴진다. 강 장관의 다소곳하고 낮은 목소리 톤은 마이크를 달지 않으면 가까이서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다. 국회상임위에서 질타를 하는 의원들에 대해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를 되풀이하면서도 의원들 간에 낯뜨거운 공방이 펼쳐지면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혼자 킥킥거릴 정도로 얄궂은 면도 있다. 송광수 검찰총장과의 폭탄주 회동 직후 송 총장과 팔짱을 끼고 나와 “우리 사이에 오해는 없어요”라고 애교 있게 얘기한 모습이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평도 있다.
반면 추미애 의원은 화장기도 적고 액세서리도 거의 하지 않는 스타일. 치마 정장을 자주 입기는 해도 과거엔 어두운 빛깔의 단색 옷 위주였다.
강 장관과 더욱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은 바로 말투다. 추 의원은 ‘아니다’ 싶은 일에는 거침없이 제 목소리를 내지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젠 우리 당에서 추 의원 앞에서 담배 피우는 의원이 한 명도 없다”고 밝힌다. 아버지뻘 되는 중진의원에게도 추 의원이 “국회본회의장에서 피우지 말고 나가라”고 소리 지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추 의원은 술자리에서의 거친 입담으로도 유명하다. ‘여성적인 면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남편 앞에서만 여성성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라 답한 적도 있다.
그러나 추 의원의 강한 ‘남성적’ 기질에 최근 들어 ‘여성적’ 변화가 찾아왔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대표경선 이전 “바지폭보다는 치마폭이 넓다”는 말로 ‘애교 있게’ 출마선언을 한 것이나 대표경선 당일 입고 나온 화려한 투피스 정장은 예전의 추 의원 모습과 사뭇 다르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에게도 예전보다 더욱 ‘상냥하게’ 대한다. ‘강 장관을 라이벌로 인정한 추 의원이 강 장관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이란 분석마저 나돌 정도다.
[6.내부의 적부터 이겨라]
강 장관과 추 의원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대중적 인기와 지지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특히 ‘강금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추미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네티즌들의 열렬한 지지는 과거 노 대통령의 ‘노사모’를 연상시킬 정도다.
그러나 두 사람이 ‘큰 뜻’을 펼치기엔 아직 정가 내부에 인맥이 엷다는 흠이 있다. 내부에 적도 제법 많은 편이다. 강 장관을 영입하려고 애쓰는 열린우리당 내부엔 강 장관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소장파 인사들이 많다. 열린우리당 차기 리더감으로 외부 인사인 강 장관이 꼽히는 게 마땅치 않은 것이다.
추 의원은 전당대회에서의 선전으로 ‘넘버2’로 상임중앙위원이 됐지만 인기가 날로 올라가는 그를 경계하는 당내 시각도 차츰 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조순형 대표보다 추 의원에 대한 견제가 거세질 것”이라며 “(추 의원이) 더욱 겸손해져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97년 가을에 발간된 〈시사저널〉의 한 자매지에 강 장관과 추 의원이 서로를 향해 밝은 표정을 짓는 사진이 실린 적이 있다. 강 장관이 추 의원과 방담을 나누는 식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것. 내년 총선 혹은 그 이후에 두 사람이 정가에서 다른 정파의 간판으로 마주칠 경우 과연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