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출입기자단 주최로 열린 송년 간담회 인사말을 이렇게 대신했다고 한다. 조촐했던 자리의 성격, 평소 공개적인 자리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는 김 실장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특별히 이상하게 여겨질 것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1주년(12월 19일)과 집권 후 첫 정기국회 폐회(12월 10일)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 소박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역대 정부들이 임기 첫 해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새 정부에서 어떤 변화와 개선이 이뤄졌는지 홍보하기에 열을 올렸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첫해에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 대통령이 지난 8월 여름휴가를 마치자마자 “이제부터는 국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각 부처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을 다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를 마감해야 하는 이 시점에도 손에 잡히는 성과가 별로 없다는 것은 단지 외부의 평가만은 아니다.
여당인 새누리당 인사들 중 소장파와 중진을 가리지 않고 이를 우려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새누리당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처지인 만큼 성과에 대한 절박함이 더하다. 정권심판론을 내걸 것이 확실시되는 야당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정부의 성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제시됐던 주요 공약들과 새 정부 출범 후 추려냈던 4대 국정기조, 140대 국정과제 등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는 지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대선 공약의 양대 축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복지 분야가 공약 축소 논란에 휩싸였다. 장기 경기침체에 세수 부족까지 겹치면서 경제정책의 초점이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바뀐 지 오래다. 기초노령연금 공약 축소, 무상보육 중단 위기 등 복지 공약 역시 당초 약속보다는 한참 후퇴했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설치로 관심을 받았던 국민통합 분야 역시 끊이지 않는 인사 잡음과 편중인사 논란, 갈수록 첨예화하는 이념 갈등 등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평가가 주류다. 특히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시도 등 정부가 국민들 사이의 이념 갈등을 부채질했다는 비판도 높다.
민주당이 지난 9월 26일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공약파기 거짓말정권 규탄대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축소를 규탄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대통령이 많은 공을 들였던 외교 분야도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빛이 바랬다. 일본과의 관계는 박 대통령 취임 첫 해 한·일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최근에는 미국이 동북아 전략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감에 따라 한·일 갈등이 한·미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냉랭한 관계에서 벗어나 한층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왔던 중국 역시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를 계기로 한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감안한 듯 박 대통령은 연말 대부분의 일정을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관련 현장 방문과 회의 주재에 할애하고 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께서는 외교 아니면 민생·경제 살리기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기댈 건 경제활성화밖에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 분야 역시 변화를 이끌 전략과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우리 경제의 활로로 제시하고 있는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창조경제 구상이 장기적인 비전이 될지는 모르지만 당장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이끌 수 있는 전략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라며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위기설이 돌았던 기업들 대부분이 실제 위기를 맞았다. 많은 기업들이 최악의 글로벌 경제 환경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정책의 키를 쥔 정부 경제팀의 존재감도 약하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정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경제 활성화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곤 하는데, 박 대통령 스스로가 여야를 극단적 대치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라도 국민 대통합과 정치 복원에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