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아무개 군 가족부 열람에 개입한 조오영 행정관 사건이 청와대 내부 알력 다툼의 산물이라는 색다른 시각도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청와대 안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결국 어공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을 꾸릴 당시 논공행상 비판을 의식해 관료 출신을 적극 우대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정관들 역시 파견직 공무원을 선호하거나 전 정권에 가까운 관료마저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몇몇 측근을 중심으로 관료 중심의 운영이 더 이상 무리라는 판단이 섰고 이후 실무진 역시 대선 캠프 출신이나 여권 보좌관 출신을 적극 기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듭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목소리는 지난 대선 당시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친박계 불만을 감안한 것으로도 읽힌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의 한 인사는 “실제 대규모 인사가 진행된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무라인이 행정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이라며 “지금도 문고리 권력이라는 식의 비판이 나오는데 더 많은 외부 인사를 앉히면 관료 출신들이 비협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이미 물갈이는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와대가 공직기강팀을 적극 활용해 행정관들을 감찰하며 군기잡기에 나선 것은 ‘알아서 떠나라는 신호’라는 관측이다. 지난 11월 말 공직기강팀은 내부감찰 결과 경제수석실에서 근무하던 한 행정관이 골프 접대와 상품권을 받은 사실을 적발했는데, 해당 행정관에 대한 징계는 원래 소속인 기획재정부로 돌아가는 것에 그쳤다. 결국 ‘내부자 겁주기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파견직 행정관 2명도 원래 근무하던 곳으로 원대 복귀했다.
어공이라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청와대는 위로 올라갈수록 직업공무원 개념이 사라지고 각자도생 혹은 적자생존의 구조가 된다.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을 비롯해 이미 청와대가 공안통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지닌 비정치인 출신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육사 37기를 중심으로 한 ‘박지만 라인’이 또 다른 축을 이루기 위해 대거 입성할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앞서의 행정관 출신 인사는 “지금은 청와대 출신이라고 기업에서 데려가려는 분위기도 아니다. 일단 정치권과 엮이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에서 청와대 출신은 진급에도 한계가 있다. 한마디로 정권이 바뀌면 시끄러운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사회 분위기가 이러니 청와대 어공들도 정권에 충성해 정치권에서 살아남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한정된 공간과 자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어공과 늘공 간 견제가 상상을 초월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보안 최우선의 국정 운영을 했음에도 민감한 정보가 줄줄이 샌 것은 늘공 출신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호 어공’으로 불리는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문 사태와 그에 따른 이남기 홍보수석 사퇴, 여의도연구소 출신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의 KT 인사 개입 의혹에 곽상도 민정수석 경질에 이르기까지 결국 박근혜 정부가 관료 사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여론전문가는 “청와대 불협화음을 꼭 늘공과 어공의 대결로 나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어느 한 쪽을 우대하기 시작하면 능력을 보일 생각보다 줄을 대려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과거 늘공들은 친정으로 돌아가 금의환향하면 됐다. 근데 청와대만 갔다 오면 같은 공무원으로 보지 않고 정치인으로 본다고 한다. 아무래도 청와대 출신이 승진도 빠르기 때문에 부처 사기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특히 정권 초기 파견직 행정관들은 단기간에 자리 잡기 위해 충성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조오영 행정관 역시 이런 케이스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 행정관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원래 있던 서울시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시기를 놓쳐 청와대에 남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조이제 국장과 조오영 행정관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끌던 서울시 출신, 이른바 S라인이다. 문제는 서울시장이 민주당 소속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라며 “서울시 출신들의 원대 복귀를 위한 동의를 얻기 어려워지자 친박계 핵심이자 직속상관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줄을 댄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전했다. 꽤 오래전부터 공직사회에서 정보보고 형태로 알려졌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건에 대해 조 행정관이 몇몇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뒤 유리한 국면에 써 먹으려 한 것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조 행정관과 감사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을 언론에 알린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은 ‘잘나간 늘공’의 사례로 꼽힌다는 것이다. 서울시 6급 주사였던 조 국장은 전 정권 내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함께 움직인 결과 5년 만에 4급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조 국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임명될 당시 함께 행안부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는 국정원으로 파견을 갔다 서초구청으로 돌아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파견 공무원들이 허수아비인가. 자기들끼리 정하고 지시하는 식이니 밑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나 역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해 본 기억이 없다”며 “요즘은 들어가 봐야 할 일도 없다. ‘월박(박원순)’이라도 할 판”이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늘 공무원이었든 어쩌다 공무원이 됐든 청와대에 ‘직업공무원’은 없는 꼴이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