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의 자산가들은 은행에 돈을 묻어두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실물자산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유럽중앙은행이 공격적인 저금리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은행에 돈을 넣어두어 이자를 받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 현재 독일의 경우 은행 이자는 평균 연 0.24%에 불과하다. 가령 1만 유로(약 1400만 원)를 1년간 예치할 경우 받는 이자는 고작 24유로(약 3만 4000원)다.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1.2%)을 따지면 120유로(약 17만 원)를 손해보는 셈이다. 이러니 저축에 흥미를 잃은 독일인들의 저축률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지사.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GfK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자산가들이 돈을 굴리는 방법은 저축 대신 서서히 소비로 옮겨 갔으며, 이런 성향은 지난 2006년 여름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에 돈을 투자한다는 걸까. 다음은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가 짚어본 독일인들의 투자 비법이다.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불안정한 주식이나 은행 이자보다 올드카, 별장, 명품시계 등에 투자하면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컨설팅업체 ‘나잇프랭크’의 ‘사치품 투자 지수’를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실물자산(올드카, 고가구, 중국도자기, 미술품, 시계 등)의 가격 변화를 나타내는 이 지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이런 실물 자산들은 평균 174%의 수익을 가져다 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가치는 꾸준히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나잇프랭크’의 앤드류 셜리는 “10년간 지수가 하락했던 적은 네 차례 있었다. 하지만 하락률은 모두 1% 미만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목돈을 10년간 은행에 예치했을 때 연 2% 미만의 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170% 이상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10년이 아니라 50년을 예치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런 실물자산 가운데 가장 투자 수익이 높은 것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올드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 동안 올드카의 가치는 평균 다섯 배 이상 상승했다. 이와 관련, ‘나잇프랭크’의 셜리는 “심지어 금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 자동차(올드카)
크리스티안 예리히는 1979년형 ‘폴크스바겐 비틀 1303 카브리올레’를 구입했다. 올드카인 까닭에 때때로 수리비가 들어가지만 꾸준히 가치가 상승하고 있어 만족하고 있다. 가령 2003년 1만 1500유로(약 1650만 원)였던 가격이 2013년에는 1만 8500유로(약 2660만 원)로 뛰어 올랐다.
올드카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초기 투자비용이 적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가령 1970년형 ‘오펠 코모도어 A’의 경우, 2003년 6500유로(약 930만 원)였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1만 1800유로(약 1700만 원)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또한 1970년대 ‘시트로엥 2CV6’는 2003년 4600유로(약 660만 원)에서 2013년 1만 1000유로(약 1580만 원)로 가격이 뛰었다. 그리고 포르셰 911 탄생 30주년을 기념해서 발표됐던 1993년형 ‘포르셰 993’의 경우, 총 5978대만 생산된 한정판인 데다 마지막 공랭식 엔진을 사용한 모델이었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단, 자동차 상태가 얼마나 양호한가에 따라 가격 차이는 있게 마련. 한 차례 전 세계적으로 리콜을 실시한 바 있던 ‘포르셰 911’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이와 관련, 인증 전문기업 ‘데크라’의 클라우스-페터 하만은 “완벽하게 좋은 자동차는 드물다”고 말했다.
또한 자동차에 투자할 경우 위험요소들, 가령 부식이나 수리비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하만은 “자동차는 복잡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결함은 아주 세밀한 곳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자칫 수리 및 복구비용이 시장 가치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으며, 되레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자동차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첫째, 이제 막 고전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자동차를 구입하고 둘째, 문제없는 모델로 선택하되 가격은 고가 대신 적당한 것을 고르라고 충고한다. 가령 1996년 생산된 포르셰 1세대 ‘박스터’는 아직까지 포르셰 팬들 사이에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잠재력이 풍부한 모델이다.
또한 과거에는 별로 명성을 얻지 못했던 자동차를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명 ‘오리 자동차’로 불리는 ‘시트로엥 2CV6’와 1960년대식 오펠 ‘레코드 C’ 같은 경우, 투자 가치가 아주 높은 자동차로 여겨지고 있다.
# 시계
미하엘 브뤼크너가 자신의 시계 컬렉션을 보여주고 있다(브라이틀링의 ‘크로노맷’,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브레게의 ‘트랜스아틀란틱’ 등).
이는 시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명품시계가 투자 가치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계들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며, 혹은 꾸준히 상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남성용 손목시계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유는 시계가 남성들이 착용하는 거의 유일한 액세서리이자, 자신의 지위를 고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나타내듯 ‘나잇프랭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명품시계들의 가치는 평균 83% 상승했으며, 오래 되고 희귀한 모델들일수록 가격 상승률은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 시계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2005년 3975유로(약 570만 원)였던 가격이 2013년 6850유로(약 986만 원)로 상승했다. 이밖에 파네라이의 ‘브론조’는 시계 수집가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떠오르는 모델로, 현재 가격은 9600유로(약 1380만 원)다.
또한 유명인들이 소장했던 시계나 어떤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시계 역시 투자 가치가 높다. 이탈리아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소장했던 1942년 제작된 롤렉스 ‘크로노그래프’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116만 달러(약 12억 원)에 낙찰됐는가 하면, 스티브 맥퀸이 1971년 영화 <르망>에서 착용했던 태그호이어의 ‘모나코 칼리브레 11’은 70만 달러(약 7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시테크’와 관련, 시계 수집광이자 전문가인 미하엘 브뤼크너는 “몇 년 전부터 투자자들은 금, 부동산, 주식 외에도 시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면서 “시계는 은행 이자처럼 지속적인 수익을 내진 않지만 ‘감정적 수익’을 덤으로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시계를 착용하거나 바라볼 때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계를 사야 시테크에 성공할까.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첫째, 반드시 시계 전문제조업체에서 제작된 시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청업체를 통해 제작된 시계가 아닌 시계 장인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기계식 시계를 구입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계식 무브먼트를 장착한 시계일 것, 그리고 칼리버(모델 넘버)가 있는 것을 구입해야 향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제조업체(브랜드)를 따져야 한다. 브뤼크너는 “이름이 중요하다! 소위 말해 ‘시계 지수’에 속하는 것들로는 파텍 필립, 롤렉스, 오데마 피게, 아 랑게운트죄네 등이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브뤼크너가 추천하는 모델로는 태그호이어의 ‘모나코’, IWC의 ‘항공 시계’, 파네라이의 ‘빈티지 모델’ 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계 투자로 수익이 완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브뤼크너는 “시계 투자 붐의 이면에는 지난 몇 년간 이미 시계 가격이 급상승했다는 점이 숨어 있다”고 충고했다. 이미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기 때문에 당분간 가치 하락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시계에 투자할 때에는 장기간 묻어둘 수 있는 여유 자산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소유하고 있는 유동 자산의 최대 10~15% 범위 내에서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한다. 경제 위기가 닥칠 경우 대부분의 사치품들의 가치는 하락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령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시 사치품의 가치는 50%까지 하락한 바 있다.
또한 브뤼크너는 시계 수집가들에게 도취 상태에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한다. 그는 “명품 시계의 80% 이상이 가치가 안정적이지도, 또 가치 상승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시계에 투자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가치가 상승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20년이 지나야 비로소 가격이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예술품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래되고 있는 미술품.
전문가들은 클래식 자동차 못지않게 미술품에 대한 투자 가치 또한 높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듯 2003년 이후 10년 동안 미술품의 가격은 평균 세 배 이상 올랐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팝아트 작가인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오르그 바젤리츠,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이다. 이들의 작품은 경매에 나올 때마다 매번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음, 어쩌면’의 경우, 1970년에는 약 500유로(약 72만 원)였던 평가액이 2013년 현재 약 6000유로(약 860만 원)로 뛰었다.
사진작품 역시 투자가들이 즐겨 찾는 투자 대상이다. 진품이 단 한 점만 존재하는 회화와 달리 복제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경매 시장에서 수백만 달러를 기록하진 못하고 있지만 투자 가치는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독일의 사진작가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작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라인강2’는 세계 최고가 사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으로, 2년 전 뉴욕에서 320만 유로(약 46억 원)에 판매되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또한 유대계 사진작가인 호르스트 P. 호르스트의 1939년 작 ‘멩보쉐 코르셋’은 현재 약 8000유로(약 28억 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2004년 세상을 떠난 헬무트 뉴튼의 케이트 모스를 주제로 한 58점의 누드 사진 컬렉션은 런던 경매에서 200만 유로(약 28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디자인 가구나 소품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임스 체어’나 ‘무라노 화병’ ‘에그 체어’ 등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안정적인 고정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에그 체어’의 경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으로 1950년대 북유럽 스타일의 대표적인 디자인 가구다. 1950년대 약 2000유로(약 288만 원)였지만 2013년 현재 약 5000유로(약 720만 원)로 가격이 올랐다.
명품 가방 가운데 투자 가치가 높은 핸드백이라고 하면 단연 에르메스의 ‘켈리백’을 빼놓을 수 없다.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켈리백’은 1985년 약 6000유로(약 860만 원)에 판매됐지만 2013년 현재 무려 세 배 가까이 오른 약 1만 5000유로(약 210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