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10일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갖고 있는 김각영 전 검 찰 총장. | ||
이날을 전후로 떠난 자들은 저마다 한이 서린 말 한마디를 남겨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남은 자들 또한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런 흉흉한 검찰 분위기 속에 ‘연대조직설’이 불거져 다시 주목받고 있다. 3·11인사에서 퇴진한 일부 간부급 검사들의 행동 통일 움직임이 그것.
‘연대조직설’의 배경은 정치권에 의한 강압적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법조계의 목소리를 모으자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번 파격 인사의 충격이 컸던 만큼, 궁극적으로는 ‘노무현식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 기류가 깔려 있다.
그 중심에 이번 인사에서 물러난 검찰 인사들이 서 있다는 추측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단 소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도 “검찰의 속성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검사들의 강한 조직력은 검찰 내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일단 옷을 벗으면 발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3·11검찰인사의 불똥으로 옷을 벗은 사시 12∼15회의 전직 간부 10여 명의 행보 또한 현재로선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거취를 놓고 고민하던 고위 간부들은 그 과정에서 동기들과 잦은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선후배 기수들이 한데 모여 구체적인 집단 행동을 결의한 흔적은 없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동기들끼리의 ‘행동 통일’에 이른 것도 최고참 기수인 12회에 그쳤다.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 한부환 전 법무부 연수원장, 김승규 전 부산고검장 등 12회 동기 3인은 이미 강금실 법무장관의 내정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행동 통일에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 김각영 검찰총장과 동기인 이종찬 서울고검장이 지난 3월7일 이임식을 마치고 떠나기 전 기자실에 들러 기자 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하지만 동반 사퇴 후 이들이 검찰 내 후배들과 접촉한 흔적은 엿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 이후, 동기인 김각영 전 검찰총장의 전격 사퇴 결심에 대해 의견 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승규 전 고검장은 “사퇴한 이후 동기들을 따로 만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후배들의 신망을 받으며 퇴임 전 남은 후배들을 위해 소신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되던 이종찬 전 고검장 역시 동기들과 의견 통일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일체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한부원 전 원장 역시 “최근 노모가 편찮으셔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때 집단행동설의 주축으로 거론되었던 사시 13회 역시 초반의 강성 기류가 최근에는 눈에 띄게 사그라들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송광수 검찰총장 내정 인선이 13회의 강성기류를 잠재웠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은 “동기 가운데 훌륭한 인사가 검찰총장에 내정됐기 때문에 더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검찰 내 집단 반발의 정점으로 13회가 지목된 것은 사실이다.
▲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 | ||
송 총장 내정자를 제외한 13회 동기들은 검찰 인사 발표 전날인 지난 10일 오후 긴급 회동,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원칙적으로 모두 사퇴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다만 이들은 집단 행동의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사퇴는 각자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김원치 부장이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인사 개혁의 정체성에 관하여’란 글을 올린 것 역시 이런 동기들의 강성 기류를 대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시 14회 역시 행동 통일로 이어지진 못했다. 김진환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비롯, 유창종 대검 마약부장, 김영진 전 전주지검장, 장윤석 전 서울고검 차장 등이 줄줄이 좌천성 인사를 당했으나, 김 전 지검장과 장 전 차장은 사표를 내고, 김 부장과 유 부장은 일단 현직에 남아 있기로 했다.
특히 검찰 내 ‘빅4’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국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으로 알려진 장 전 차장은 “직속 상관인 서울고검장에 15회 후배를 앉히고 그 아래에 나를 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서열파괴라는 미명하에 나가라는 협박이나 다름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장 전 차장의 가족은 최근 근황에 대해 “운동과 사우나로 피로해진 심신을 추스리고 있는 중이며, 당장 별다른 계획은 없다”는 설명이 있었다.
사시 15회 중에서는 김규섭 전 부산고검 차장과 조규정 전 광주고검 차장이 사표를 냈고, 박종열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일단 자리를 옮겼다. 검찰 내에서는 “호남 출신인 김, 조 전 차장을 초임 검사장급 자리인 고검 차장에 임명한 것은 사실상 나가달라는 뜻이었다”는 분위기.
이에 대해 조 전 차장은 “인사 발표를 보고 나 혼자 담담한 마음으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혀 주변 인사들과의 사전 교감설을 부정했다. 그는 “당분간은 좀 쉬면서 향후 계획은 천천히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3·11검란에서 퇴진한 검찰 고위 인사들의 연대조직설은 찻잔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