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정책네트워크 ‘내일’ 회의실에서 열린 ‘새정치추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한 박호군 공동위원장(왼쪽 세번째)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호창 소통위원장, 윤장현 위원장, 박호군 위원장, 안철수 의원, 김효석 위원장, 이계안 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안철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한 기획위원이 밝힌 신당 스케줄이다. 새정추를 꾸린 지 1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준비기구가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윤장현 공동위원장은 지난 12일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창준위 구성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측이 이처럼 창당에 속도를 내는 데는 외부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안 의원과 함께 분위기를 띄울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내일의 또 다른 기획위원은 “솔직하게 ‘누굴 영입할 것인가’에서 ‘누구든 영입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창당 문제에 늘 신중했던 안 의원 역시 최근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인재 영입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것은 내일 측이 공개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내일은 그동안 안철수 의원의 정책연구 기능을 강조하고 창당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이미 지역별로 534명의 실행위원을 둔 상황에서도 “신당 창당과 다른 의미의 지역조직화 작업”이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내일 역시 새정추와 같은 창당준비기구였던 셈이다.
설상가상 일부 실행위원들은 기초의회 공천을 놓고 새정추 측과 잡음을 내고 있다. 안철수 측 공보담당인 금태섭 변호사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따른 유·불리와 상관없이 신당 창당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기초의회에 내보낼 지역 인사를 모집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광역 규모에 집중하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 의원 측은 “실행위원 발표 때는 ‘큰 인물이 없다’, ‘신선한 인물이 안 보인다’라고 비난하고, 새누리당 출신을 데려오면 ‘안철수는 정체성이 뭐냐’고 따지기부터 한다. 어떻게 하든 욕을 먹는 상황”이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내일 측은 TK(대구·경북)와 강원 지역 실행위원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텃밭 지역에서 인재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대선 안철수 진심캠프 국민소통자문단으로 활약했던 TK 지역 인사 두 명은 이구동성으로 “대선 이후 안 의원 쪽 일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지역조직을 완비해 창당 조건을 갖추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난관은 자금 문제다. 내일 기획위원 중심의 비공개 회의에서는 현재 “최소 120억 원은 있어야 뭐라도 해볼 수 있다”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최후의 수단인 안 의원 사재 출연에 관해서는 안 의원 최측근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내일의 또 다른 기획위원은 그러나 “돈 문제는, 아직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야권 분열을 우려하는 민주당의 견제 역시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새정추로 자리를 옮긴 이계안·김효석 전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꽤 큰 존재감을 지닌 인물이어서 추가 이탈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사람 빼가는 식의 정치는 새로운 정치라고 볼 수 없다. 새 정치가 민주당의 일부를 허물어 자신의 집을 짓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안철수 의원실 한 보좌관은 “새정추 활동과 실행위원을 통한 지역조직화는 별도로 볼 문제”라면서도 “지금 새정추에서 창당에 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실행위원 추가 발표가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사람 빼가기’라는 최재성 의원의 비판에 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새정추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계안·김효석 전 의원은 민주당 안에서 자산가로 꼽혔던 분들이다. 안철수 의원 쪽에서 박호군 위원장을 참여정부 때 과기부 장관을 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던데 실상은 4대강 홍보 전위대로 활동하던 친이계 인사”라며 “당을 떠나 진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보겠다며 갔던 김성식·박선숙 전 의원 같은 사람이 안 보이는 게 사실이고 현실이다”라고 전했다. TK 출신 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안철수 신당 움직임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안 의원은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한다. 결국 야권 지지자들에게 대통령으로 추대해 달라는 것이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너나없이 ‘절레절레’
안철수 신당이 본격 닻을 올리면서 그간 안철수 신당행을 타진해 왔던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속속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부분은 “신당으로 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6일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안철수 신당행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밝혔다. 원희룡 전 의원은 “안철수 신당행은 헛소문”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과 함께 안철수 신당행이 점쳐졌던 김영춘 전 의원 역시 신당행을 부인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나는 민주당 귀신”이라고 못 박았다.
안 의원 쪽과 연대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던 ‘국민동행’ 역시 안철수 신당과는 선을 긋는 분위기다. 최근 “김덕룡 전 한나라당 대표를 모셔야 한다”는 이계안 새정추 공동위원장 발언에 대해 국민동행의 한 관계자는 “이계안 전 의원이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한 것 같다”라며 “원래 두 분이 고교 선후배로 친한 사이다. 향후 국민동행이 안철수 의원 측과 합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과 교감이 있었다”고 밝힌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선 전까지 무소속으로 남아있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상도동계 인사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안 의원 쪽이 지나치게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