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운정회’ 창립총회가 열린 국회 헌정기념관에 정계원로들과 현직 국회의원 등 수백명이 몰렸다. 가운데 김종필 전 총리와 악수하는 심대평 위원장을 중심으로 왼쪽은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 오른쪽은 이완구 의원, 정진석 사무총장, 정우택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JP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 ‘충성’이라며 거수경례 후 만세를 외치자 고개를 돌려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JP는 대강당으로 이동하기 전 제헌 국회 이후 최다선 의원(9선)인 그를 기념하기 위해 두상 조각상을 전시해 둔 것을 둘러봤는데 “조각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JP가 대강당으로 자리를 옮기자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중에는 운정회 회장을 맡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정우택 이완구 성완종 의원 등 9명의 부회장단 및 강창희 국회의장, 새누리당 서청원 이인제 의원, 정운찬 전 총리 등 충청권 출신의 주요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김수한 김재순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총리 같은 정계원로들과 현직 국회의원 상당수도 함께 자리했다.
JP는 입장과 동시에 이한동 전 총리, 강창희 국회의장과 나란히 무대에서 자리를 지켰는데 대회사와 긴 축사가 이어졌음에도 한 치의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이 흘러서야 JP의 연설이 시작됐는데 세간의 우려와 달리 마이크를 앞에 두자 최전성기로 돌아간 듯한 ‘박력’을 보여줬다. “할 말이 참 많은데 시간이 없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떼더니 한 치의 오차 없는 기억력을 동원, 무려 40여 분 동안 ‘사자후’를 토해내며 백전노장의 내공을 마음껏 드러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분서주하며 나라 발전을 위해 지도한 모습이 선하다”며 JP는 당시 경제개발에 대해 언급했다. JP는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맹자의 문구를 인용해 박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 업적을 설명했는데 “5·16 직후 박 대통령께서 아주 정확한 정치노선을 정립했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 민주주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걸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JP는 이한동 전 총리(왼쪽), 강창희 국회의장과 나란히 무대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밖에도 한·일 국교정상화 보상금을 기대 이상으로 받아냈던 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유에 나섰다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정부에 알려 인력을 파견하게 된 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를 찾아 “한국에 베트남전 파병을 부탁하라”고 교섭해 결국 성공시킨 일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얽힌 다양한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JP는 연설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목소리 톤이 높아지며 더 생기를 찾아갔다. 정치에서 물러나 오랜 기간 칩거하면서 쌓인 현실정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훈수’를 역사를 통해 풀어나가는 듯했다. JP의 계속된 열변에 주변에서는 “물을 드리라”는 등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JP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이 없으니 마무리를 해 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까지 연설을 이어나갔다.
사회의 재촉에 마지막 마무리의 말을 이어가던 JP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히 이야기했다. JP는 “이제 곧 아흔 살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니 뭐 하나 대단한 것 없이 잘못한 일들만 떠올라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모두가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나도 늙고 병들어 ‘생노병’까지 왔다. 이제 ‘사(죽는 일)’만 남았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사후 계획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JP는 “이제 갈 곳은 죽는 곳밖에 없는데 국립묘지엔 안 가겠다고 했다. 우리 조상이 묻히고 형제들이 누워있는 고향 가서 눕겠다”며 “회고록도 쓰지 않고 비석에 ‘영생의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눕노라’ 하나 쓰겠다”며 담담하게 ‘공개적인 유언’을 해나갔다.
연설하는 김종필 전 총리.
몇 번의 ‘재촉’ 끝에 연설을 마감한 JP는 곧바로 퇴장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모인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후유증으로 불편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일반 지지자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한 지지자는 “오늘이 아니면 언제 총리님을 뵙겠냐 싶어서 새벽부터 왔다. 이렇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부디 건강하시길 바란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후 사랑재로 자리를 옮긴 JP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비롯해 김수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한동 이한구 전 총리 등과 만나 환담을 나눴다. 주로 충청권 정치인들의 모임으로 주목받은 이 자리에서는 강 의장이 현 정국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에 JP는 “야당은 집권당을 상대로 머리를 쓰고 지면서 이기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물리력을 쓰면 결국은 손해”라며 “야당은 실권을 쥔 사람들을 때려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져주면서 얻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국민들도 국회에서 싸우면 왜 그렇게 싸우느냐고 비판을 하지 미워하지는 않는다. 야당은 국회를 지키면서, 지는 것으로 당에 이로운 것을 얻어내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창립총회를 마친 운정회는 앞으로 JP의 연대별 발자취와 공식 및 사적 발언을 정리해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또한 JP의 출생지인 충남 부여에 기념관을 설립하는 계획도 추진 중인데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휠체어 제가 밀겠다” 한달 별러…
김종필 전 국무총리만큼이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들이 있다. 그의 휠체어를 밀었던 두 남자, 새누리당 이완구 의원과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이 주인공이다. 그 자리는 단순히 휠체어를 미는 것이 아닌 충청도를 대표하는 ‘JP의 후계자’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행사장에 들어설 때 JP의 휠체어를 밀었던 이완구 의원은 잠깐의 시간을 위해 무려 한 달을 준비했다고 한다. JP의 국회 방문이 확정된 순간부터 직접 자신이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결국 수락을 받은 것. 행사 당일도 이 의원은 오전 일찍 JP의 자택을 찾아 승합차로 함께 이동한 뒤 휠체어를 밀며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에서 김 전 총재의 옛 지역구인 부여·청양에 출마해 80%에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됐는데 이번을 계기로 ‘포스트 JP’라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찬 행사장인 사랑재로 이동할 땐 이 의원이 아닌 정 사무총장이 JP의 휠체어를 잡았다. 정 사무총장은 자민련 시절 JP가 ‘내 복심((腹心)’이라고 말할 만큼 신임을 받았던 고 정석모 전 충남도지사의 아들로 대를 이은 인연을 자랑한다. 평소 자신을 ‘JP 문하생’이라 칭할 만큼 JP를 따르던 정 사무총장 역시 이날 확실한 얼굴 도장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내년 지방선거의 유력한 충남도지사 후보군으로 꼽히는 정 사무총장으로선 톡톡히 홍보효과를 본 셈이다. 이래 저래 ‘3김 시대’의 긴 그림자는 아직도 국회의 넓은 마당을 뒤덮고 있는 듯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