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환상특급> 촬영 중 사망한 배우 빅 모로. 작은 사진은 <환상특급> 포스터.
이 이야기에 대해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의 간부들은 찬반이 갈렸다. 제작 부문 부사장이었던 루시 피셔와 스튜디오 책임자였던 테리 시멜은 반대 의견을 펼쳤는데,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이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라는 것. 이에 존 랜디스 감독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베트남에서 두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다는 설정을 집어넣었고, 이에 스튜디오에서도 오케이 사인을 냈다. 스필버그는 빌 코너 역에 빅 모로를 추천했다. 한국에도 <전투>나 <뿌리> 같은 TV 시리즈로 잘 알려진 빅 모로는 터프가이나 악당 역으로 유명한 연기자. 이젠 그가 구할 두 아시아계 아역배우만 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전쟁터를 재현한 영화 현장은 꽤 위험했다. 랜디스 감독은 캐스팅 업체에 의뢰했지만, 에이전시는 두 아역배우가 대사가 없는 엑스트라이기에, 연기자 캐스팅에 관련된 캐스팅 업체를 거쳐 고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위험한 장면이기에 혹시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을 둘러댄 것이었다.
이에 랜디스 감독은 데뷔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왔으며 <환상특급>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던 조지 폴시에게 부탁했다. 폴시는 자신의 비서인 도나 슈먼의 남편, 해럴드 슈먼에게 전화했다. 의사인 슈먼은 종종 아시아계 사람들과 일했던 것. 슈먼은 과거 동료였던 피터 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첸은 동생인 마크 첸에게 이야기를 했다. 마크에겐 여섯 살짜리 딸 레니 첸이 있었고, 아내와 상의 끝에 영화에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어린 시절 작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피터 첸은 또 다른 동료였던 다니엘 레에게 연락했다. 그는 아내와 상의했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하는 일곱 살 난 아들 마이카 딘 레를 영화에 출연시키게 되었다.
빅 모로와 함께 숨진 아이들.
첫 촬영은 1982년 7월 22일에 있었다. 빅 모로가 헛간에 갇힌 아이들을 구해내는 장면이었다. 현장엔 레니의 부모와 마이카의 엄마가 있었다. 밤에 시작된 촬영은 그 다음 날인 7월 23일 새벽 3시 30분에 끝났고, 랜디스 감독은 양측에 각각 500달러를 건네며 집에서 쉰 후에 밤에 다시 나와 달라고 이야기했다. 빅 모로가 포화 속을 헤치고 강을 건너며 아이들을 구출하는, 클라이맥스 신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촬영이 빅 모로와 두 아이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