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종금 의혹사건이 검찰수사의 지지부진으로 아직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호 준 전 회장(사진)의 동문인맥이 로비라인과 관 련해 주목받고 있다. | ||
나라종금 사건의 중심에는 김호준(45) 전 보성그룹 회장이 있다. 평소 정치권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과시했던 김 회장의 행보에 대해 주변에서는 김대중 정권을 곤혹 속에 빠트렸던 이용호, 진승현게이트에 버금간다는 지적도 오가고 있다.
‘겟 유스트’ ‘보이런던’ 등으로 90년대 중반 국내 의류업계를 평정했던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리고 있다. 타고난 감각과 기획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경영자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지나친 과시욕과 개인 야망 달성에 매달리다가 망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그의 대인관계 역시 격의없고 탈권위적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주변인맥을 한껏 과시하는 사교술의 귀재라는 다소 부정적 측면도 부각되고 있다. 종합적으로는 “김 전 회장이 타고난 사업수완과 함께 개인적 야망이 남달랐던 인물이었고, 그를 위해 주변인맥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와 관련 김 전 회장을 수사했던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지금도 대통령이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만큼 야심이 큰 인물”이라며 “학연을 통해 정치권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은 것 같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서울 출신으로 중동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특히 그의 인맥에서 주목되는 것이 중동고 학맥. 김 전 회장이 중동고 선배들을 자신의 로비 인맥으로 활용한 흔적은 곳곳에서 엿보인다.
우선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 관련 인물로 부상되고 있는 두 명의 노 대통령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인 Y씨가 중동고 선배. 그는 현재 김 전 회장으로부터 5천만원의 로비 자금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으나, 본인은 “그런 사실이 없다. 언제든 검찰에서 당당히 밝힐 용의가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역시 검찰 수사에 의해서 김 전 회장의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전직 고위 관료 3명의 K씨 가운데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의 K씨 또한 중동고 선배 학맥으로 연결된다. 김 전 회장측도 K씨와의 친분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의해 김 전 회장의 로비 인맥으로 지적받은 여권 실세들 가운데 H씨와 또 다른 고위인사 역시 김 전 회장의 중동고 선배다. 검찰과 정치권에서 김 전 회장의 로비 인맥으로 알려진 6~7명 가운데 4명이 중동고 선배라는 점은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약 1백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사학 중동고는 동문들의 유대 관계가 끈끈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정가에서는 동문들의 정기적 모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H씨 등이 단지 김 전 회장과 중동고 동문이라는 이유로 많은 의심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로비의 실체가 없는 만큼 중동고 인맥이라는 것도 없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이 동문 선배들을 챙긴 사례는 나라종금 인수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97년 의류업계 경영자인 그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 다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김 전 회장은 사석에서 “학교 선배가 경영하는 나라종금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도움 요청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선배는 김 전 회장의 연세대 사회학과 동문인 김아무개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검찰 내부에서는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수사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노 대통령에게 이 사안을 처음 보고했던 김종빈 대검 차장은 이후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 사건은 내사중지 상태에 있다. 내사중지의 뜻을 잘 알지 않느냐”는 말로 수사할 사안이 아님을 내비쳤다. 김 차장은 “당시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은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한 보고였을 뿐, 수사 계획을 밝히거나 지시를 내리거나 한 사항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지난해 대검 중수부장 시절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본부장으로서 이 사건을 진두지휘한 당사자.
현재 검찰은 나라종금 사건에 대해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당시 김 전 회장의 비리를 직접 수사한 민유태 중수1과장은 기자의 여러차례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 분위기는 “심부름한 사람(보성그룹 계열사 사장 최아무개씨)의 진술만으론 수사가 어렵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회장은 물론, 돈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고, 보성그룹의 자금책임자인 유아무개씨는 현재 미국에 도피중이어서 수사할 대상이 없다는 것. 김 차장 역시 “유씨는 피의자가 아니고 참고인 신분이기 때문에 미국에 수사를 협조할 사안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가에서 제기되는 “김 전 회장의 로비 인맥이 예상외로 정치권 전반에 많이 퍼져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은 검찰의 미적지근한 태도와 맞물려 관심을 끈다. 실제 지난 2000년 김 전 회장이 위로금 등 명목으로 돈을 전달했던 K 전 안기부장과 K 전 검찰총장은 한때 YS정권과 DJ정권의 실세들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대선 직전 김 전 회장 로비의 여권 실세 연루설을 폭로했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최근 들어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홍 의원측은 “검찰 수사를 한번 지켜보자”는 입장만 밝힐 뿐, 여권실세 연루설과 야당으로의 불똥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