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1월 18일 제9차 국회 본회의에서 취임 후 첫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퇴장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현역 배제론은 국회 과반 의석 확보 우위를 이어가야 한다는 절대과제 때문에 도출된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어느 정도 교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야권이 새 정부의 임기 첫 해를 부정 선거 이슈로 덮고 있는데 집권 여당이 실력행사를 전혀 못하고 있는 것도 배제론이 제기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 의원들의 지방선거 출마 러시가 이뤄지고, 다음 보궐선거에서 그 비워진 그릇을 원래대로 채우지 못하게 되면 식물 국회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는 이렇다 할 그림 한번 그리지 못하고 열세 속에서 마감할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국회를 야권에 헌납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청와대에선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을 가리켜 ‘지방장관’이라 부르고도 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역시장·도지사를 그렇게 예우하며 불렀다. 그래서 한 인사가 행정력이 검증된 인사군을 직접 검증하며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지역의 누가 연락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사실처럼 회자됐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가 앞서 퍼진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차기 과제는 지방권력 장악이기 때문에 충성심이 철저한 친박계 현역 의원으로 지방 행정을 장악할 것이란 이야기였다. 이른바 ‘친박계 지방장관론’이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이명박 정부 때 치른 지방선거에서 당선한 5기 민선단체장들이 친이계 성향이기에 색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크게 대두했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서병수 의원, 인천에선 이학재 의원, 대구에서는 조원진 서상기 의원, 울산에서는 정갑윤 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모두가 ‘친박색’이 강한 인사들이다. 여권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당선 1년 6개월, 취임 1년 4개월 만에 치러지는 내년 6월 지방선거는 조금 이른 감이 있는 임기 중간평가다. 지금까지 치러진 재·보궐 선거가 투표율 20%대를 보이면서 박근혜 정부의 초반 평가로 환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투표율이 높은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이와 다르다.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는 현역 단체장의 대항마로는 현역 국회의원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여권이 국회 과반을 지키고자 모험과 도전을 하지 않았다가 지방선거에서 완패하면 국회 과반수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회 과반을 잠깐 잃을지는 몰라도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그 여세를 몰아 그 다음 달 치러지는 재·보선도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는 아주 그럴 듯하다.”
서병수 의원, 이학재 의원
현역 단체장이 여론조사에서 다른 도전자보다 두세 배 이상 거리를 벌리는지 확인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체지수가 높아진다. 그 결과가 알려지고 소문이 나면 출마 러시가 이뤄진다. 당 공직자추천위원회에서는 이런 주자군을 서류 심사한다. 이후 예비후보로 등록한 새누리당 성향 후보군을 여론조사하고 3~5명으로 압축한다. 압축된 후보가 체육관 경선을 치른다. 1명이 선택되면 공천한다. 새누리당이 누누이 약속해 왔던 ‘시스템 공천’이다. 여권 동향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가 현역을 최소한으로 차출해야 한다는 바람은 가질 수 있지만 만약 이런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전국,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필패일 수밖에 없다. 배후조종설에다 수렴청정설까지 모두 사실이 된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선을 긋는 구태 방법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철저히 경선으로 가서 당헌·당규대로 ‘2(대의원)·3(당원)·3(일반 국민)·2(여론조사)’ 룰을 적용하면 박 대통령으로선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새누리당도 흥행을 불러올 수 있다. 굳이 야권과 언론과 여론이 문제 삼을 만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국회 동향을 파악하는 권력기관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 설이 난무하면서 사실 확인 차원에서 취재를 좀 했다. 그런데 결론은 청와대에서 지방선거에 대해서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장성택 처형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굳이 기획이고 전략이고 짤 것 없이 여권에 유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런 느긋함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전혀 지방선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회 안에 정치개혁특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년 1월 말까지는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관조적 분위기도 컸다.”
바닥에서부터 기어야 할지, 공천 때문에 여의도에서 비벼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후보군들의 애만 타들어 가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