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승리 직후인 지난해 12월 25일 한 발언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일요신문> 조사 결과 공기업에는 친박계 및 대선캠프 출신 인사, 정치권 비전문가 등이 ‘낙하산’을 타고 줄줄이 내려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왼쪽부터 현명관 마사회 회장, 김학송 도로공사 사장, 김성회 지역난방공사 사장, 김석기 항공공사 사장.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감사원 등에서 10여 년을 공직생활을 하다 호텔신라를 거쳐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장, 삼성물산 회장을 지냈다.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지난해 박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경제 분야 참모로 활동했다. 올해로 72세인 현 회장은 그동안 마사회와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취임한 김학송 전 의원은 경남 진해에서 3선 의원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유세지원본부장을 맡아 활약했다. 공기업 사장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도로공사의 부채는 지난해 기준 25조 원에 달하는데, 김학송 신임 사장이 이러한 경영 위기 속에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자질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18일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취임식을 한 김성회 전 의원은 현 정부의 ‘보은 인사’라는 구설수에 올랐다. 김 사장은 지난 10·30 보궐선거 직전 자신의 지역구인 화성갑에 출마하려 했으나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때문에 이번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임명이 보궐선거 출마 포기에 따른 보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에는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한국항공공사 사장에 올랐다. 김 사장은 지난 2009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용산 철거민 농성 진압을 지휘해 ‘용산 참사’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취임 당시 한국공항공사 노조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공항의 대표 자리에 30여 년간 경찰로 재임한 비전문가를 앉힌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출근 저지를 시도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임명된 공공기관장들 중에는 관련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실력을 보였지만 친박계로 분류돼 논란을 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10월 한국거래소 신임 이사장으로 내정된 최경수 이사장은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장과 조달청장까지 지낸 금융인 출신이다.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역시 한국철도공사 부사장을 거쳐 한국철도대학 총장까지 역임한 바 있다. 정창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김한욱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도 각각 국토해양부와 제주도청 등에서 관련부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전문성은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낙하산 논란을 안고 있어 공기업의 방만경영을 해결할 인사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공기업 노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공기업이 방만 경영을 한다고 비난하는데, 그 시작은 낙하산 인사에 있다”며 “사장으로 온 인사가 자신이 맡은 공기업의 업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업무 효율이 나오고 개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낙하산 인사들은 노조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임기만 채우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대다수 해당 공기업 노동조합들은 낙하산 기관장 내정에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으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이미 취임한 마당에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이 좋을 게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낙하산 인사 논란을 떠나 공기업 운영 자질과 의지를 갖춘 인물이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노조도 있다. 한국마사회 노조 관계자는 “한국마사회 창립 이래로 단 한 번도 내부 승진을 통해 사장 자리에 오른 인사가 없다. 모두 외부에서 영입돼왔다”며 “그래서 노조에서는 다만 사장으로 경마 사업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마사회는 신용산지사 개장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규제 대응, 경마산업발전이라는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다”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역량과 의지를 가진 인사라면 낙하산이라고 꼭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박 대통령 주위 인물들은 아직도 인사를 둘러싸고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9일 대선 1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국민대통합이라는 거대한 슬로건 아래 동참했던 주요 인사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담판을 지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던 정치권 인사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을 공개석상에서 요구한 셈이다.
한편 30개 공기업과 87개 준정부기관 중 현재 공석으로 남아 있는 자리는 한국관광공사와 여수광양항만공사, 한국연구재단 등 6곳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