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5일 대검 중수부에 출두하고 있다. 이 전 총재는 불법대선자금에 대해 감옥에 가서라도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나라당은 사실 이번 대선자금 정국에서 '차떼기'수법 등이 드러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몸을 납작 엎드리고 대선자금 정국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다행이 이회창 전 총재가 불법 대선 자금에 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밝혀 당이 한결 부담을 던 모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수사에서 운 좋게 벗어난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대선 ‘잔금’과 이 돈의 개인 유용에 관한 수사다. 비록 이 전 총재의 ‘희생’으로 당 대선자금에 대해선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이루어지겠지만 검찰이 개인 유용 부분에까지 면죄부를 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의원들의 비양심적인 개인 유용 행태까지 드러날 경우 당이 회생불능의 치명타를 입고 분열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마지막 아킬레스건인 대선자금의 개인 유용에 대한 미스터리는 어디까지일까.
한나라당은 한때 초상집 분위기였다. 지난 대선 때 SK로부터 현금다발로 1백억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 1차 내상을 입은 바 있다. 그리고 최근 LG 삼성 등으로부터도 무려 4백억원에 이르는 불법 자금을 받은 것이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정치 검찰의 편파 수사 폭거’라며 맞대응을 해왔지만 자금의 규모와 엽기적인 전달 방식 등이 드러나면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당내 분위기는 ‘이번 소나기만 피하면 특검 정국이 우리를 살릴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이회창 전 총재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감옥에 가겠다고 밝힘에 따라 당은 한결 대선자금 정국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하지만 과연 시련은 끝난 것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나라당은 앞으로 닥칠 큰 ‘해일’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 10월 중순부터 정치권에 유입된 불법 대선자금을 파헤치기 위해 사상 초유의 인력을 동원해 노력해 왔다. 검찰은 2개월에 걸친 대대적인 수사 결과 5대 기업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어느 정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이에 대해 “기업수사는 대선자금 수사와 같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끝날 수도 있다. 총수 소환에 관심이 많은데 그게 본질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의 최종 목표는 ‘기업 때려잡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검찰은 기업 수사를 차츰 접고 음성적인 정치자금과 이를 유용한 정치인에 대한 수사로 옮겨가고 있다.
▲ 지난 14일 노무현 대통령은 ‘10분의1’발언으로 대선자금 수사 의지를 천명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런 검찰의 방향 선회에 한나라당은 초긴장 상태다. 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개인 유용까지 밝혀지면 당은 회생불능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하면서 “그럼에도 당의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선자금 수사는 당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였지만 개인 유용으로 수사 방향이 바뀌면 몇몇 의원들이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매우 입조심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선 부산 지역 의원 세 명이 등장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대선 과정에서 지역의 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그것인데 아직까지 수사가 답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한나라당 U의원이 지난 대선 때 대선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부산 지역의 한나라당 J부위원장과 구의원 등이 지구당 위원장인 U의원이 지난 대선 때 대선 지원금을 유용했다며 중앙당에 탄원서를 제출했기 때문. 탄원서를 낸 J부위원장은 지구당에 지급된 대선 지원금 가운데 20%만 조직가동에 쓰였으며 나머지 80%는 이 의원의 개인 호주머니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U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필요할 경우 법적인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은 SK에 이어 LG 삼성 등의 불법 대선자금이 속속 밝혀지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여기에 개인 유용 비리마저 드러난다면 회생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한나라당에 꼭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펴는 당 인사도 있다.
우선 개인 유용 비리에는 과거 실세였던 옛 ‘친창 그룹’ 멤버들이 주로 걸려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 인사의 관측이다. 이들은 당내에서 물갈이 대상자에 우선적으로 거명되는 인물들과 일정부분 겹치기도 한다는 것. 따라서 최병렬 대표는 검찰의 ‘칼’을 빌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물갈이 작업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그 뒤 최 대표가 재창당 공론화 등을 통해 당의 ‘리모델링’에 나선다면 향후 검찰 수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팎에선 대선자금 정국에서 입은 상처투성이를 리모델링이란 ‘반창고’로 가릴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