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경찰의 진입에 항의하기 위해 측근들로부터 현장방문 요청을 받았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역대 정권 사상 최초로 공권력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강제 진입했던 2013년 12월 22일은 안철수 의원에게도 향후 정치행보에 전환점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최근 야권 최대의 이슈였던 ‘철도파업·민주노총 진입’ 사태 때 안 의원이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것에 대해 상당히 의아해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 정동영 민주당 전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야권의 터줏대감들은 자리를 지켰지만 안 의원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안 의원의 정치행보라면 민주노총 사무실 진입 사태 때 당연히 현장방문을 하고 지지를 선언했어야 그동안의 대여 강경행보와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안 의원이 현장 방문을 기피하는 듯한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행동은 없고 말뿐’이라는 푸념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최근 기자는 안 의원의 핵심 참모 몇 명으로부터 “12월 22일 민주노총 사무실이 위치한 정동 경향신문사로 안 의원이 직접 찾아가 시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켜보는 ‘내부 플랜’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알려지지 않은 안 의원 측의 민주노총 사태에 대한 나름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었던 셈이다. 당시 안 의원 측 관계자들 중 최측근이라 불릴 수 있는 몇몇 인사들이 안 의원에게 “이번만큼은 현장에 가셔야 한다”며 강력하게 현방방문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 의원의 발걸음은 결국 정동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정동으로 향하는 안 의원의 발목을 붙잡았을까. 안 의원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몇몇 최측근들에게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 가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국민들께 낡은 정치, ‘보여주기’식 정치는 하기 싫다”며 현장 방문을 끝까지 거절했다고 한다. 이어 안 의원은 강인철 새정치추진위원회 조직1·2팀장을 비롯한 몇몇 측근들과 함께 민주노총 및 철도파업 사태와 관련한 법률적 검토에 착수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안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것 때문에 속을 쳤다. 가라고 청을 넣어도 왜 안 가는지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정치는 안 의원의 주장처럼 한 번에 해결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서 국민을 대변하라고 있는 건데…. 안 의원은 사람과 함께 있는 그 느낌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정말 이런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안철수와 노무현의 차이를 여기서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인데 그때는 법률적 검토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줬어야 한다. 당장 정동으로 달려 나갔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사실 안 의원이 새정치를 표방하면서 보여주기식 정치를 지양한다는, 새로운 시도는 인정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때때로 정치가 약자의 아픈 곳을 헤아리는 상징적인 행위에 의해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을 때도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한 토론회에서 한인 출신 청년에게 공격을 당했지만 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줘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육영수 여사가 약자들을 찾아다니며 서민들의 감정을 다독거려준 것도 국민정서에 대한 ‘공감’의 표현 아니겠는가. 이성적으로는 안 의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만 감성적으로는 현재의 국민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난장판이 된 건물 입구. 구윤성 기자
안 의원 측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은 우리 상식으로 예측 불가능한 유형이다. 굉장히 순수하고 정직하다. 그런 면이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정치라는 게 다수와 어우러져야 하는데 안 의원은 마치 구름 위의 도련님 같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인간적으로 깊이 소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자기고집이 강하고 항상 부유층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서민을 깊이 이해 못하는 계급적인 한계도 문제다. 지나친 농담일 수도 있지만 안 의원은 마치 ‘착한 박근혜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천주교 시국선언’, ‘철도파업’ 사태 등 일련의 사건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세력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저항세력을 물리치겠다’는 식으로 강경대응하면서 대중에게 ‘불통’ 이미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덕분에 최근 박 대통령은 프랑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를 변형한 ‘말이 안통하네뜨’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착한 박근혜’라는 평을 받게 된 안 의원, 그는 내부 관계자들과 소통을 잘하고 있을까.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매일 저녁마다 팔에 쥐가 날 정도로 전화 통화를 많이 한다. 얼마나 전화로 소통을 많이 하시는지 대통령께서 ‘내가 왜 불통이냐’고 하소연하실 정도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안 의원 측 내부 인사 일부는 “안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자주 소통하는 편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마 박 대통령보다 더 전화를 안 할 거다. 안 의원이 언제라도 전화를 할 만큼 편하게 느끼는 내부인사가 소수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물론 안 의원의 행보에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말과 행동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 의원은 이미지가 깨끗해서 자칫 잘못하면 바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말과 행동을 아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그러했듯이”라고 긍정적인 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안 의원 입장에선 자신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기 때문에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소극적인 부분이 그만큼 국민은 물론 내부 측근들에게조차 실망을 주고 있다는 점을 안 의원 역시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측근은 “최근 안 의원이 영화 <변호인>을 보더니 느낀 바가 많은 것 같다”며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지 않나. 안 의원을 보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조금씩 시대정신을 가진 선비 유형에서 현실의 상인 감각까지 갖춘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한편 안철수 의원과 한때 각별한 사이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안 의원의 ‘새정치’가 가망이 없다는 실망감이 나오게 되면 국민적 에너지를 담은 엔진이 꺼질 수 있다. 비행기도 어느 정도 고도를 지나면 꺼진 엔진을 되돌려도 추락하지 않는가. 지금 안 의원은 아슬아슬한 고도 위에 있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