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인맥이 총선을 앞두고 여권 내 파워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수석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
노무현 대통령이 ‘동업자’로 지칭했던 386 핵심측근 안희정씨가 지난 12일 저녁 검찰에 출두하면서 남긴 말이다.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검찰에 소환된 안씨는 이틀 후 구속됐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기업 등으로부터 11억4천만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했다는 것이 구속사유다.
안씨가 검찰에 소환된 지 몇 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엔 그와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노 대통령의 또 다른 386 핵심측근 이광재씨(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가 지친 표정으로 대검 청사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인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으로 1억원을 받아 안씨에게 전달한 사실을 실토한 후 대검 청사를 나선 이씨는 “희정이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인 ‘안-이’ 두 사람이 출입문을 드나드는 12월12일의 대검 청사 주변의 풍경은 대선 승리 1년을 맞은 대통령 측근들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선 승리 이후 1년 사이에 ‘노무현의 사람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또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를 점검해 봤다.
부침(浮沈)이 가장 심했던 이들은 캠프 출신 386그룹이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386그룹은 대거 청와대로 들어갔다. 비서관급 이상(당시 직책)만 이광재(국정상황실장) 윤태영(연설비서관) 서갑원(의전비서관) 천호선(참여비서관) 김만수(보도지원비서관) 등 5명이었고, 배기찬 황이수 여택수 백원우씨 등 행정관급은 두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수가 많았다. 다만 안희정씨는 제1부속실장 임명설이 나돌았지만 나라종금 사건에 발목이 잡혀 당시 민주당에 남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들 중 이광재씨는 여권 정보라인의 핵심인 국정상황실장을 맡아 ‘실세 중 실세’라는 평가를 받으며 386그룹의 중심축으로 활동해 왔다. 이씨는 그러나 “땅만 보고 살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정 전반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은 끝에 지난 10월 물러났다.
이씨의 사퇴는 특히 열린우리당 내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천정배 의원의 ‘국정쇄신’ 요구의 표적이 되면서 이뤄져 주목을 끌었다. 이씨는 그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으나 야당이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추진하면서 이를 포기했다. 이후 17대 총선에서 강원 평창·영월 출마를 준비하다 썬앤문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불러가게 됐고 내년 1월부터는 특검을 받아야 할 처지다.
안희정씨는 청와대 입성이 좌절된 후 민주당 국가전략
연구소 부소장으로 있으면서 고향인 충남 논산·금산에서 자민련 이인제 의원과의 대결을 준비해 왔다. 안씨는 나라종금 사건의 여파로 5월에는 검찰에 의해 두 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되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 분당과 신당 창당 국면에서 동교동계 비판과 이른바 ‘집권당 사무총장론’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우리당 충남창당준비위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다 이번에 구속되는 비운을 맞게 됐다.
다른 386 중 윤태영 비서관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겨 무난하게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정무라인으로 자리를 옮긴 서갑원 천호선 비서관은 총선출마를 위해 연말에 청와대를 나올 예정이다. 또 김만수 비서관, 백원우 배기찬 행정관은 지난 8월과 11월에 역시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했으며 앞으로 추가 출마자가 있으리란 예상이다. 이들은 그러나 젊은 측근의 양대 축인 안희정-이광재씨의 몰락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 386에 대한 대내외 평가가 부정적으로 흐르면서 마음고생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캠프 내 시니어급 측근들에게도 변화가 적지 않았다. 이기명(전 후원회장) 이강철(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염동연씨(전 민주당 인사위원)로 대표되는 시니어 그룹들도 이런 저런 논란의 중심에서 풍파를 겪긴 마찬가지. 우선 ‘영원한 후원회장’으로 불리는 이씨는 정부 출범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인사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숨은 실세’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5월 들어 노 대통령이 한때 운영하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부채 변제과정에서 자신의 경기도 용인 소재 땅 매매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자 공식무대에서 사라졌다.
노 대통령은 용인 땅 문제가 논란이 되던 6월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이란 제목의 편지를 띄워 “저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제가 대통령만 되지 않았어도 후배 언론인에 의해 매도되는 일이 없었을 분입니다”라며 애틋한 감정을 표시해 화제가 됐다. 이씨는 지난 10월 중순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입’(공보특보) 노릇을 하다 최근 ‘노무현 저격수’로 변신한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의 ‘반노’(反盧) 발언을 겨냥해 “당신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염동연씨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염씨는 노 대통령이 취임 다음날인 2월26일 사적(私的) 인사로는 최초로 이강철씨와 함께 오찬에 초청할 정도로 최측근 인사. 그러나 나라종금 사건에 연관돼 4월에 구속됐다. 염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병보석 판결을 받아 출소한 후 서서히 대외행보를 넓히고 있다. ‘조직의 귀재’로 불리는 염씨는 내년 1월11일 지도부 경선에 나설 각 진영에서 앞다퉈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철씨는 구설에 여러 번 올랐지만 비교적 순탄한 행로를 걷고 있다는 평가다. 이씨는 노 대통령과 서로 “인생의 절반을 노무현에게 걸었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의 반을 강철이에게 줄끼다”고 말할 정도의 사이. 이씨는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정균환 원내총무 등 반노 인사들을 ‘살생부’ 대상으로 거명해 논란의 대상이 됐으나 우리당 창당 이후 대구·경북의 ‘맹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그는 특히 최근 유력 차기주자 중 한 명인 정동영 의원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등 386그룹들이 빠진 여권 내에서 행동반경을 급격히 넓히고 있다. 우리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하는 문제도 고민중이다.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그룹인 이른바 ‘부산 인맥’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구속 파장이 워낙 크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데미지가 거의 없다는 평가다. 문재인 민정수석-이호철 민정 1비서관 등 청와대 라인이 아직 건재한 데다 조성래 우리당 부산시지부장과 정윤재 최인호 송인배씨 등 386들도 총선 준비과정에서 별반 구설이 없는 상태.
부산 인맥들이 건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론 청와대 라인의 경우 사정업무 등 비리 의혹과 원천적으로 거리가 먼 분야에 배치됐고, 나머지 인사들도 일찌감치 지역 활동에 뿌리를 내리면서 야당과 보수언론의 과녁에서 멀어졌다는 점 등이 꼽힌다.
내년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이들의 여권 내 파워가 갈수록 커질 것이란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본인의 거듭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문 수석이 총선 출사표를 던질 것이냐의 여부다. 최근 김혁규 경남도지사의 우리당 입당을 계기로 여권의 PK지역에 대한 대공세가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 수석의 거취가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