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2014년 증권업계의 화두다. 투자 관련이 아니다. 업계 종사자들의 지상목표다. 시장상황도 어렵지만, 주요 증권사 매물이 쏟아지면서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자칫 증권맨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주요 대형 증권사도 새 주인을 만날 가능성이 커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적자 늪에 빠진 중소형 증권사들은 퇴출 또는 매각의 벼랑으로 내몰릴 공산도 작지 않다.
증권업계가 지속되는 불황의 여파로 구조조정 태풍이 거세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증권 타운. 일요신문 DB
M&A는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매물로 나온 증권사 대부분의 경우 잠재 인수자들이 이미 증권업을 영위하고 있다. 대형사나 중소형사 모두 비슷한 사업모델을 가진 국내 증권업계 특성상 중복되는 부분에 대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이미 감원을 시행한 증권사들이 대부분이지만, M&A가 이뤄질 경우 추가적인 인력감축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익명의 한 증권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이 은행이자율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주식거래나 금융상품 판매수수료도, 채권 등을 통한 자기자산운용 수익도 늘어나기 어렵다보니 결국 비용절감, 그 가운데서도 인건비 등 일반 관리비를 줄이는 게 손쉬운 수익성 관리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업계재편
현재 매물로 나온 KDB대우증권은 KB금융지주에, 현대증권은 현대차그룹에, 동양증권은 대만 유엔타증권 등 해외에 팔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KB금융지주가 우리투자증권을 농협에 양보(?)한 것은 KDB대우증권을 인수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차그룹은 HMC투자증권(옛 신흥증권)을 인수했지만, 외형이 초라해 재계 2위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평가다. 삼성증권은 업계 1위를 다투고 있으며, SK증권이나, 한화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현대차그룹보다 재계 순위가 낮은 그룹의 계열 증권사들조차 HMC투자증권보다 덩치가 크다.
재계 관계자는 “2000년 현대그룹에 ‘왕자의 난’이 터졌을 때 첫 전투가 벌어진 곳이 현대증권”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이미 그룹 종가였던 현대건설을 인수했고,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꿈인 일관제철소 건설도 이룬 만큼 현대증권까지 가져오면 옛 현대그룹의 위상을 거의 다 회복하게 된다”고 풀이했다.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증권가의 이 같은 관측이 맞아떨어진다면 2013년 9월 말 기준 대우, 삼성, 우리투자, 현대의 자기자본 순위가 대우(KB증권과 합병시 4조 5160억 원), 우리투자(NH농협증권과 합병시 4조 3511억 원), 현대(HMC투자증권과 합병시 3조 7011억 원), 삼성(3조2872억 원) 순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몸집 불리기가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지는 미지수다. 은행 출신의 증권사 고위임원은 “은행과 증권은 전혀 다르다. 은행이 초식동물이라면, 증권은 육식동물”이라며 “신한금융투자나 하나대투증권 등이 업계 수위로 도약하지 못하는 것은 육식동물에게 초식을 강요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증권사의 발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증권사 임원은 “재벌그룹의 경우 큰돈을 벌기보다는 그룹 내 시너지를 내는 정도의 역할만 주문한다.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치지 말라는 뜻”이라면서 “은행계 대형사뿐 아니라 재벌계 대형사들도 움츠러든다면 증권업계 전반적인 활력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생존경쟁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Tapering·테이퍼링)는 글로벌 금리상승의 단초다. 한국은행은 올 물가상승률이 지난해보다 1%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역시 금리상승의 빌미다. 채권가격하락(금리상승)은 운용자산 대부분을 채권에 넣어두고 있는 증권사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싼값에 자금을 조달해 온 콜 차입도 정부 규제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신용도에 따른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투자위험이 높은 곳에서 수익을 낼 수밖에 없다. 자칫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위험요소다. 이미 2013년 회계연도 6개월간 63개 증권사 가운데 25개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투자책임자는 “중소형 증권사는 자산운용으로 수익을 냈는데, 국고채 투자로는 조달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고위험 고수익 채권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이들 채권을 주로 발행하는 중견기업들의 부도위험이 높아지다 보니 이마저도 마땅치 않다”면서 “가만 앉아서 고정비용 감당하느라 적자를 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