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홀딩스의 계열분리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최근 발언이 논란을 낳고 있다. 조 회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한 이는 김영민 전 한진해운 사장이며 ‘능력 있는 사람’은 석태수 신임 사장을 일컫는다.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최은영 회장의 측근을 내치고 자신의 측근을 사장으로 앉힌 이상 한진해운의 계열분리는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말 대한항공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에 1500억 원을 지원키로 결정하면서 한진가의 움직임은 바빠졌다. 대한항공 역시 재무구조 악화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한진해운에 자금 지원을 결정한 것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경제개혁연대는 “재무적 어려움에 처한 대한항공의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정”이라며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 지원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재계와 해운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한진해운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는 한진해운 지분 15.33%를 담보로 잡았다는 것이 더 많은 뒷말을 낳았다. 지분을 담보로 아예 한진해운을 품 안에 두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그 중의 하나. 이에 대해 당시 대한항공 측은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한진해운 계열분리 문제와 별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직까지도 대한항공 측은 한진해운 계열분리를 열어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비록 지금 상황이 그렇게(계열분리 불허) 보일지 몰라도 회사 정상화가 급선무이며 정상화 후 그때 가서 계열분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입장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한진해운 빌딩. 일요신문 DB
대한항공은 또 오는 4월 한진해운 유상증자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한진해운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난 12월 19일 이상균 대한항공 부사장(재무본부장)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경영설명회에서 “(2014년) 4월 한진해운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최대주주가 된다”고 인정했다. 최대주주로서 한진해운의 독립경영과 계열분리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당초 해운업계에서는 김영민 전 사장 후임으로 윤주식 한진해운홀딩스 부사장이 선임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금 지원과 지분 담보, 유상증자 참여와 최대주주 등극 예정인 상태에서 대한항공 측 인사를 후임 사장으로 임명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윤 부사장은 한진해운홀딩스 소속인 데다 한진해운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대한항공 출신이다.
그러나 조양호 회장은 ‘석태수 사장 임명’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를 두고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을 접수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석 사장은 (주)한진 대표이사 사장으로 5년 넘게 재직하고 있던 상태였으며 지난해 8월 한진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새로 설립한 지주회사 한진칼의 초대 대표이사를 겸직하던 인물이다. 석 사장은 1989년부터 약 2년간 한진해운에 몸담은 적이 있다.
최은영 회장. 일요신문 DB
석 사장과 반대로 조 회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한 김영민 전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의 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김 전 사장은 고 조수호 회장이 미국 유학 시절 인연을 맺었다. 조 전 회장은 유학 시절 금융전문가·재무통들과 친분을 맺어왔으며 2003년 한진해운 회장에 올라서면서 이들을 중용했다.
김 전 사장은 조 전 회장이 투병생활을 할 때 한진해운을 이끌었으며 조 전 회장 사후에는 외국계의 지분 매입에 맞서 대한해운 등과 주식을 교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한진해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사장은 당시 경영권 방어를 이끈 재무통이자 한진해운에 끝까지 남은 한 명이다.
이 같은 이유로 김 전 사장은 대표적인 ‘조수호 사람’으로 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진해운이 외국계로 넘어가지 않고 조양호 회장이 욕심낼 수 있게 된 것도 경영권을 방어한 김 전 사장의 덕인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조 전 회장 타계 후 경영 경험이 없는 최은영 회장이 한진해운 회장에 오르면서 믿을 만한 사람은 김 전 사장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 입장에서 김 전 사장이 눈엣가시였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진해운의 독립경영과 계열분리 요구의 출발점이 김 전 사장이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한항공 관계자도 “김 전 사장은 조 회장 타계 후 계열분리를 추진한 데다 한진해운의 상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의 눈에는 김 전 사장이 여러 모로 ‘형편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형제 간 화해모드? 글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하지만 한진해운 관계자는 “직접 발주한 것이 아니라 외국 업체가 발주하고 우리가 이를 용선하는(빌리는) 것”이라며 “이 같은 형식의 발주가 처음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형제간 문제로 확대 해석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지난 12월 2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부인 김영혜 씨가 별세, 장례식장에 조양호 회장 일가가 조문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출장 중인 조 회장을 대신해 조 회장의 부인과 두 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가 고 김 씨의 빈소를 찾은 것. 이보다 앞서 11월 26일 열린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7주기 추모식에는 조양호 회장 측과 조남호 회장 측이 모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조를 이뤘다.
재계에 널리 알려지기로는 장남 조양호 회장과 차남 조남호 회장의 사이가 좋지 않고, 조양호 회장과 삼남 조수호 회장의 사이가 좋았던 터라 양쪽의 참석 여부는 큰 관심거리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빈소에는 가족이 찾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조수호 회장 추모식 참석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진해운 관계자는 “고 조수호 회장 추모식에 조원태 부사장이 참석했다”며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소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