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권오준 포스코 사장은 소재부분에 해박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지난 1986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으로 스카우트돼, 열연연구실장을 맡은 이후 권 내정자는 줄곧 포스코에만 몸담았다. 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박판연구팀장·부소장·소장을 역임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장을 거쳐 현재에도 기술부문장(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포스코 입사 이후 유일하게 해외·관리 경험을 쌓은 이력은 2003년부터 약 3년간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유럽사무소 소장(상무)으로 근무했을 때뿐이다.
포스코 이사회는 현재 포스코가 처해 있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적임자로 권 내정자를 꼽았다. 그가 뛰어난 엔지니어이기 때문이다. 이영선 포스코 이사회 의장은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고유기술 개발을 통한 회사의 장기적 메가성장 엔진을 육성하는 등 포스코그룹의 경영쇄신을 이끌어갈 적임자”라며 권 내정자를 최종 후보로 확정한 이유를 밝혔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권 내정자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이끌어 우리 국민들이 자랑하는 기업, 국가 경제 발전에 지속 기여하는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해 나가는 데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 내정자가 포스코의 차기 회장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포스코 내부에서조차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으며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차기 회장 내정과 관련해 ‘해석을 삼가라’라는 분위기가 돌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정준양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직후 여러 인물이 포스코의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됐으나 권오준 내정자에 대한 얘기는 많지 않았다. 심지어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 권 내정자를 떠올리는 사람보다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경영 능력이 검증된 인물도 아니고 현장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 기술연구에만 매진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쪽의 장점이 다른 쪽에선 단점이 된 셈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내에서 R&D(연구개발) 분야에 있는 연구직들은 회사의 경영과 조직에서 한 발 빗겨나 있다”면서 “이들이 경영 일선에 나갈 일은 드물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연구직으로 다시 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귀띔했다. 기술연구에 주로 몸담고 있던 권 내정자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권 내정자가 자산 81조 원에 52개 계열사(2013년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 기준)를 두고 있는 재계 6위 포스코를 이끌어갈 만한, 이른바 ‘준비된 최고경영자(CEO)’이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경영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권 내정자는 “닦아나가겠다”고 답했다. 오는 3월 포스코 정기주총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개월 정도다.
포스코 측은 “유럽사무소장 등의 경험을 통해 해외 철강사 네트워크와 글로벌 역량을 갖추고 있는 점 또한 강점”이라며 권 내정자의 경영 이력이 전무하다는 지적에 반박했다. 하지만 약 3년간의 유럽사무소장 경험이 포스코를 이끌어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의문스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산업 흐름으로 볼 때 유럽은 철강산업의 격전지도 아니며 중요한 곳도 아니고 이미 쇠퇴한 지역이다”라고 꼬집었다. 권 내정자는 유럽사무소장 시절 마케팅이 아니라 기술 쪽에 중점을 두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강판 쪽 기술은 유럽이 최고”라며 “유럽은 철강산업의 원조 격이며 지금도 고급 제품은 다 유럽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권 내정자가 정준양 회장의 고교·대학 후배라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안 그래도 업계에서는 권 내정자가 정 회장의 신임을 듬뿍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앞의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 재임 시절 권 내정자의 권한과 임무가 한층 강화됐다”며 “CTO(최고기술경영자)까지 맡으며 고교·대학 선후배 사이로서 누구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돈독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술적·이론적 배경과 스펙으로 볼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라면서 “한 조직의 회장과 사장으로 있으면서 서로 지원하고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즉 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정 회장이 권 내정자에 대해 “기술 분야에서 최고라는 점은 인정했다”고 한다.
이변이 없는 한 권 내정자는 포스코의 8대 회장이자 포스코 사상 유일한 엔지니어 출신 회장이 된다. 엔지니어 출신 회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김선홍 전 기아 회장이 회자된다. 기아 출신 한 인사는 “당시 김 회장을 보며 직원들이 모두 ‘나도 열심히 하면 회장까지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으며 이것이 장점이자 조직으로선 강점”이라면서 “하지만 ‘좋은 제품’에 대한 의욕이 강해 매출과 수익적 측면 등 경영적 판단보다 자신감에 따른 제품을 고집하는 것은 단점”이라고 술회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팔리는 제품 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어 시장과 기술의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포스코의 차기 회장 후보 확정과 관련해 정치적 입김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결정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무색무취’하다는 평가까지 받는 권 내정자를 단 이틀 만에 최종 후보로 확정한 점,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에 일사천리로 진행한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우리를 정치집단이 아닌 한 기업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