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4일 30대 그룹 사장단 투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규제완화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해당 부처와 협의를 진행했던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산업계 현안이 발생하면 주무부처 사무관이 전화를 걸어와 마치 통보하듯이 미팅을 하자고 연락해오고 경제단체들 실무자들이 줄줄이 참석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는 “부처 담당자가 기업들의 의견을 물어오고 여론을 살피는 것 같아서 뭔가 달라지긴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사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기업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룰을 정하고 심판관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가 기업에게는 ‘영원한 갑’이나 마찬가지다.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국가주도 개발경제에 익숙해진 기업환경에서 정부 주도의 관행이 굳어지면서, 규제권을 갖고 있는 정부는 늘 기업에게 갑의 입장에 서 있었다. 대기업 총수들은 경제부처 장관들의 호출에 사실상 무조건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전 관행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이 전 대통령은 경제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건희, 정몽구, 최태원 등 그룹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나 계열사 사장과의 면담을 지시했다. 이 전 대통령은 “회장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며 전문경영인들과 만나는 것을 선호했다. 그 자신이 전문경영인으로 그룹 총수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만날 때 가졌던 부담감이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라 경제 부처들도 자연스럽게 재계와의 간담회에서 ‘급’을 낮춰 회장들보다는 사장단이 참석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0년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된 ‘불법 대선자금’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재계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들마다 선거운동과정에서는 재벌개혁을 외치며 표를 얻었는데, 취임하고 나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재벌 총수들과 직접 만나는 데 부담을 느낀 것도 정부와 총수들과의 공식적 회동을 자제하게 만든 한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경제 부처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경제단체들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업들의 대표 단체라면 기업인들이 회장을 맡는 것이 상례인데도,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비 기업인 출신들을 수장으로 앉히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무역협회 회장에,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경총 회장에 선출된 것이 대표적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제부처 장관들과 경제5단체장이 만나는 자리에서 정부쪽 인사들은 일단 한 전 총리나 이 전 장관에게 ‘선배’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나서 마치 지시사항을 메모하듯이 받아 적는 풍경이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기업들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정부 출신 고위인사들을 선출한 의도가 실상은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0대 그룹 기획총괄 사장단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규제 개혁을 약속하면서 “기업들이 선제적 투자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이끌어 줄 것”을 당부하고, 사장들은 윤 장관에게 갖가지 ‘민원사항’의 해결을 주문하는 형식이었다. 경제 부처 장관이 대기업 회장단이 아닌 실무형 사장들을 만나는 형식도 그렇지만, 그 내용까지도 기업주도로 형성되는 것이다.
박웅채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