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인 지난 2002년 6월 12일 오전. 현대모비스의 급작스런 공시가 발표된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본텍과 현대모비스의 합병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합병만 되면 본텍 지분 30%를 갖고 있던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당시 상무가 그룹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 지분 2%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때를 놓치는 바람에 지금의 정의선 부회장은 12년째 기아차 지분 약 1%를 제외하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그룹의 ‘절대반지’, 순환출자구조에 손가락을 끼우지 못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현대엠코, 이노션 등의 대주주지만 그룹 핵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 합병이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현대·기아차 양재동 사옥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6일 현대차그룹은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 추진 사실을 공식발표했다. 합병비율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가 1 대 0.1776171. 합병기일은 오는 4월 1일. 그런데 주가 흐름이 애매하다. 발표 전 합병설이 나왔을 때는 현대엔지니어링 대주주인 현대건설은 급락했고, 현대차와 기아차 주식도 하락했다. 반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주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하지만 공식발표 후 주가 흐름은 정반대였다.
애초 합병설이 나왔을 때 현대건설 주가가 하락한 데는 우회상장 우려가 컸다. 현대엠코 주요주주는 정 부회장(지분율 25.06%), 현대글로비스(24.96%), 기아차(19.99%), 현대모비스(19.99%), 정몽구 회장(10%) 등이다. 현대차그룹이 밝힌 합병비율이면 정 부회장은 합병법인의 지분 11.7%를 갖는다. 38.62%의 지분을 가진 현대건설에 이은 2대 주주다. 다른 주주는 현대글로비스 11.67%, 현대모비스 9.4%, 기아차 9.4%, 정몽구 회장 4.7%, 산업은행 3.9% 등의 순이 된다.
정 부회장에게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려면 앞서 언급한 순환출자 구조에서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16.9%)을 사들여야 한다. 시가로 4조 60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정 부회장이 가진 주식가치는 현대글로비스 2조 7000억 원, 이노션 4000억 원 정도다. 합병법인 지분을 순자산가치로 추정하면 1500억~2000억 원. 4조 7000억 원까지는 1조 4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정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가치가 올라야 이 차액을 확보할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현대엠코-현대엔지니어링 합병법인이 상장사인 현대건설과 다시 합병하는 우회상장이다.
합병법인의 외형은 현재 현대건설의 약 30% 수준. 지금 상태로 합병하면 정 부회장이 보유할 수 있는 지분율은 3%에 불과하다. 현대건설이 합병법인과 합쳐져 시가총액이 30% 불어난다고 해도 현 시가로는 2400억 원 정도에 그친다. 합병법인의 기업가치가 오를수록, 현대건설의 기업가치가 떨어질수록 정 부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은 높아진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이번 합병은 현대건설에 부정적이다. 합병 발표 전 현대건설 주가가 급락한 이유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합병법인을 직접 상장하는 방법이다. 합병을 공식발표한 이후 현대건설 주가가 급등한 것은 이 두 번째 시나리오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변성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합병법인이 현대건설과 추가로 합병해 얻는 실익이 별로 없다. 업무는 중복되고 사업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데다 대주주 외에 65%의 지분을 가진 현대건설 주주들의 반대도 클 것”이라며 “정 부회장의 지분 승계를 위해서도 구주 매출 등을 통한 상장이나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가져오기 위한 주식 스와프(맞교환) 등의 방식이 낫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어느 정도 경영능력을 보여주느냐, 그리고 현대차그룹이 얼마나 여론의 동의를 얻어 내느냐도 향후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지켜봐야 할 관전 포인트”라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
기업 공개하면 새 ‘실탄’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 발표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 광고대행사 이노션도 주목해야 할 회사다. 정의선 부회장이 40%,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40%의 지분을 가졌다. 최근 정몽구 회장은 수년 전 했던 사회환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회사 지분을 내놨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에서 계산한 이 회사 지분 10%의 가치가 1000억 원이다.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가 4000억 원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는 2012년 재무제표상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한 수치다. 2013년 말 기준으로는 이노션의 기업가치가 더 높아졌을 수 있다. 게다가 현대·기아차의 매출이 늘어날수록 이노션의 성장 가능성도 높다. 이노션의 순이익 추이를 감안하면 2013년 말 순자산은 3500억 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그만큼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도 커지는 셈이다. 이미 제일기획, 4위 GⅡR(LG그룹 계열)이 상장된 만큼 이노션이 상장한다면 기업가치도 덩달아 더 오를 여지가 크다.
특히 정 회장이 사회환원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몽구재단에 기증한 이노션 지분 20% 가운데 절반은 사모투자펀드(PEF)인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됐다. 사모펀드는 언젠가는 차익을 실현해야 한다. 이노션의 상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 중 하나다. 증시 관계자는 “이노션은 사실상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인 만큼 주식 맞교환으로 그룹 핵심사 지분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과연 공정한 가격에 거래가 이뤄졌느냐는 의혹을 남기기 쉽기 때문”이라며 “주식을 팔아 돈을 만들든, 아니면 맞교환을 추진하든 간에 일단 지분의 공정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업공개(IPO·상장)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