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우승을 위한 과감한 투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큰돈을 쓰는 게 아까워 이대호, 홍성흔 등 팀의 4번 타자들을 일본과 두산에 빼앗겼고,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 탓에 지난 시즌엔 6년 만에 처음으로 4강에 들지 못했다.
4강 진출에 실패하며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지난해 겨울부터 롯데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롯데의 변화가 감지된 건 지난해 중반부터였다. 롯데는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사인 ‘A사’와 협찬 계약을 맺고, A사가 제작한 유니폼과 스파이크를 선수단에 공급했다. 여기다 롯데는 원정 숙소를 기존 중급 호텔에서 최고급 호텔로 승격하며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 롯데 선수는 “원정 숙소가 최고급 호텔로 바뀌다 보니 아침, 점심, 저녁 식사의 질도 훨씬 좋아졌다”며 “솔직히 선수들이 구단의 호의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하며 의심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말부터 진행한 연봉 협상에서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연봉 협상에 임하는 롯데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롯데는 구단 측의 입장만을 강요하며 ‘연봉 통보’로 일관했던 이전과 달리 선수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서 이견 조율에 나서는 진정한 협상 태도를 보였다. 팀의 주축 타자 손아섭은 “연봉 협상장에서 구단 관계자분이 우리 집안 이야기를 꺼내며 부모님 이야기를 하셔서 깜짝 놀랐다”며 “원체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아, 롯데가 날 정말 위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통보’에서 ‘협상’으로 태도가 바뀌면서 연봉 후려치기 관행도 사라졌다. 롯데는 손아섭의 연봉으로 전해 대비 2배 가까운 4억 원을 책정한 데 이어 주요 선수들의 연봉도 대폭 인상해줬다. 성적이 다른 떨어지는 선수들에겐 동결 카드를 제시했다.
롯데 선수단 사이에서 “우리 구단이 달라졌어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롯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야구해설가는 이처럼 극적인 롯데의 변화 배경을 “구단 수뇌부의 사고 전환과 정치권의 압박”으로 꼽았다.
“지난 시즌 4강 진출에 실패하며 ‘아무리 부산이 야구도시라고 해도 결국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 관중이 감소한다’는 걸 구단 수뇌부가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100억 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부어 FA 강민호를 잔류시키고, 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 때도 호의를 베푼 것 같다. 특히나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이 선수들과 소통에 나서며 불신의 벽이 상당히 허물어진 인상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압박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 해설가는 “지난해 집권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경제민주화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롯데 구단의 불공정한 선수 계약 관행을 꼽은 바 있다”며 “이에 압박을 느낀 구단 수뇌부가 ‘연봉 통보’ 관행을 폐기하고, ‘협상’으로 태도를 바꾼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롯데는 기존 스프링캠프였던 미국령 사이판 대신 이번부터 미국 애리조나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한다. 배 단장은 “아직 사이판 호텔과의 계약이 남아있고, 미국 본토의 훈련비가 더 많이 들지만, 선수단의 경기력 향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올 시즌부터 애리조나에서 전지훈련을 하기로 했다”며 “앞으로도 선수들에게 좋은 훈련 환경을 제공하고, 이것이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