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어떠한가. 스타의 반열에 올라있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톱 디자이너들. 직접 대면해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그들의 춤추는 듯한 제스처, 우아한 말투, 미술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온갖 예술장르를 섭렵해 내는 열정. 일반인들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부티크 숍 구경도 해보자. 진열대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급모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가구와 핸드백과 액세서리들이 옷의 품격을 한껏 높인다.
▲ 한 패션쇼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대졸 직후 인턴 3개월 동안은 적으면 30만원 많으면 70만원정도라니. 심지어는 월급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인턴기간이 끝나도 1백만원이 넘는 곳이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 3∼4년의 경력디자이너가 돼도 연봉 2천만원을 넘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부티크 숍을 직접 운영하는 톱 디자이너들의 설명은 간단했다. 디자이너계에는 ‘도제제도’가 여전히 통용된다는 것이다. 톱 디자이너들을 만나 호되게 일을 배우고 몇 년이 지나도 진짜 디자이너가 될까 말까라는 것이다.
그러니 ‘배우는 과정에 무슨 월급이냐’라는 것이 통념이 되고 있다. 숍에서 본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밍크코트, 한 자리에 50만원이나 하는 R석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톱 디자이너들의 여유와 그들의 숍에서 일을 하는 월급쟁이 디자이너들의 급여 수준은 상당한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면 톱 디자이너들은 돈을 버는가. 몇몇은 분명 돈을 버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2003년 불경기를 넘기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매 시즌 개최해야 하는 패션쇼 비용, 신규상품 출시비용, 재고 비용, 홍보 비용 등은 물론 백화점 등 유통업계의 수수료 압박 이들을 미치게 만들 지경이다. 올 봄 S/S SPA 쇼에서 만난 한 기자의 말이 걸작이다.
“패션쇼마다 맨 앞줄은 홈쇼핑 업체 머천다이저(MD)들이 앉아요. 아무리 콧대 센 톱 디자이너들일지라도 20대 MD들에게 절절 매죠. 왜냐구요? 매출의 돌파구를 찾을까해서죠. 실제로 톱 디자이너들이 홈쇼핑 쪽으로 판로를 바꿔 돈을 번 사례들이 있거든요. 결국 1천만 명을 상대로 저가품을 만드는 것인데 거의 이름만 빌려 준 기획상품이죠. 그래도 그 줄이나마 잡아 경영난을 타개했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빚이 수십억원대인 곳도 부지기수일 겁니다. 결국 빚인생이지요.”
수천만원대의 모피코트를 파는 회사에서 월 1백만원의 급여도 받지 못하는 신참내기 디자이너들. 그래도 그들은 어린 계집아이 시절의 환상을 잊지 못해 오늘도 뛰고 내일도 뛴다.
(주)서령창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