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특검팀은 소환자들을 3단계로 구분해 수사해왔다. 1단계로 실무자를, 2단계로 실무책임자들을 소환 조사해왔던 것. 그런데 특검팀 수사가 시작된 지 한 달 보름 정도 지난 시점에서 특검팀은 3단계 수사에 돌입했다.
3단계 수사 대상에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장관 등이 올라 있다. 이들 가운데 박 전 장관만이 6월2일 현재까지 특검 수사를 받지 않은 상태.
박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전모를 꿰뚫고 있을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박 전 장관의 소환을 서두르고 있다.
▲ 지난 2월14일 대북송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그의 특검 소환이 머잖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 같은 사실은 최근 특검에서 직간접으로 조사 받은 대북 송금 관련 핵심 4인(임동원 박지원 이기호 정몽헌)의 진술을 두 명의 당사자와 관련 변호인 등에게 확인했다고 <오마이뉴스>는 덧붙였다. 이와 관련, 특검팀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검팀에서 수사중인 대북 송금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핵심 인사는 6명 정도로 추려진다.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지원 전 장관, 임동원 전 국정원장,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김보현 국정원 3차장 등이 바로 그들.
이들 가운데 특검팀이 직간접으로 조사하지 않은 사람은 김 전 대통령과 박 전 장 관뿐이다. 그런데 특검팀이 와병중인 김 전 대통령을 수사하기에는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함으로써 이번 사건의 진상에 한 발 더 접근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의 심중을 꿰뚫는 핵심 측근. 이런 까닭에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김심’에 따른 행보였다는 게 특검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
박 전 장관이 특검에 소환되면 정몽헌 회장의 대북 송금 요청을 받고서 박지원-임동원-이기호 등이 ‘3자 협상’을 가졌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조사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자 협상’을 거쳐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뒤따를 것이다.
만약 특검 조사에서 ‘3자 협상’을 가진 것으로 밝혀지면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박 전 장관은 그동안 ‘거짓말’을 했던 셈이다.
특검팀을 취재하고 있는 한 일간지 기자는 “기자들 대부분은 박지원씨가 ‘대북 송금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이 2000년 3∼4월 중국에서 비밀리에 접촉했던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현대의 대북사업 파트너였다. 박 전 장관과 송 위원장이 북경에서 만날 때 정몽헌 회장도 배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박 전 장관이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게 한나라당측 주장.
특검팀은 박 전 장관에게 북한 인사와의 비밀 접촉과정, 북한과 대북 송금 합의설의 진상, 송금과정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한으로 보낸 자금의 조성 경위와 송금 일자 등도 캐물을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대북송금=정상회담 대가’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는 특검팀은 처음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최근 새롭게 밝혀진 박 전 장관의 측근인 하아무개씨 계좌에서 나온 수천만원대의 뭉칫돈 출처와 성격에 대해서도 조사를 병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뭉칫돈이 현대와 연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하씨는 “현대측으로부터 어떤 돈도 받은 적이 없고 박지원 전 장관에게도 건넨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진상은 아직 베일에 가려진 상태. 특검팀은 문제의 뭉칫돈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000년 3∼4월에 하씨의 통장으로 입금된 점을 주목, 남북정상회담 사전 접촉과정에서 현대측이 제공한 자금일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수사중이다.
특검 소환이 임박하자 박 전 장관은 최근 변호사를 선임, 특검 조사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지난 5월31일 산업은행에 불법 대출을 지시한 혐의로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구속했다. 이보다 앞선 5월23일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대출해 줄 당시 산업은행 총재였던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에 대해서도 업무상 배임혐의로 구속했다.
따라서 특검 수사에서 박 전 장관의 ‘3자 협의’ 사실이 밝혀지고, 추가로 남북정상회담 추진 및 대북 송금 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사법처리도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특검 주변에서 나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