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이정현 홍보수석(왼쪽)과 새누리당의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사실상 대변인처럼 기자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해 5월 이정현 홍보수석이 정무수석에서 자리를 옮긴 후 윤창중 전 대변인이 먹칠한 청와대 이미지를 씻기 위해 기자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부터 김행 대변인보다 이 홍보수석의 대변인 활동이 두드러졌다. 대변인 선임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지 않자 일각에서는 “청와대에서는 전부터 수석이 대변인 역할을 해 와서 겸임하는 것도 별 문제 없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한 달여 만에 임명된 민경욱 신임 대변인이 춘추관에 섰지만 KBS 사내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야당과 각종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어 이 홍보수석의 대변인 역할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청와대처럼 다른 직책에 있는 사람이 대변인 역할을 대신하는 ‘역구조’는 새누리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은 남녀 대변인 2인 체제를 3인 체제로 전환하며 홍보라인을 강화했다. 박대출 함진규 의원이 새 대변인으로 임명됐고 민현주 대변인은 유임됐다. 신임 대변인들은 민주당과 경쟁하면서 각종 브리핑과 논평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오히려 당내에서 대변인들이 나서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청와대와 교감이 있는, 이른바 ‘실세’들이 대변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 핵심인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의 경우 대변인들이 활동하는 주말에 당사 기자실을 찾아 브리핑과 기자간담회 등을 진행해왔다. 주로 공식적으로 기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대변인들의 역할이지만 당의 공식 입장 등에 대해서 주로 윤 의원이 나서는 일이 잦다. 윤 의원은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공식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처럼 당에서는 윤상현 의원이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다. 주말에 윤 의원이 일정을 진행한다고 먼저 언론에 공지해버리면 상대적으로 윤 의원보다 입지가 약한 대변인들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게다가 일요일은 일정을 진행하면 다음날 신문에 이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귀띔했다.
민주당도 대변인을 새로 임명하는 등 변신을 시도했지만 당 내에서는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변인들이 중요한 현안에 ‘각’을 세우지 못하면서 제1 야당의 역할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년간 민주당 당직자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과거 민주당에는 박상천 박지원 정동영 등 명대변인들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요즘 민주당 대변인을 보면 과거 같은 인물이 없다. 19대 대변인들 중 딱히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대변인들의 의제설정 등 정무적 감각 등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특히 대변인들의 정무적 감각이 좀 부족한 것 같다”며 “얼마 전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민주당 논평이 가장 늦게 나왔는데 이러한 어젠다는 민주당이 먼저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인물이 없다는 것이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나타난다”고 평했다.
대변인들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당 대표와의 교감이 약한 점을 들고 있다. 김상진 뉴코리아정책연구소장은 “대변인에게 중요한 것은 대표의 마음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에서는 이정현 홍보수석, 새누리당에서는 최경환 원내대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며 “그런데 민주당엔 그런 사람은 없다. 지금 같은 상황은 대변인의 자질 부족 문제로도 볼 수 있다. 명대변인 같은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능력보다 계파 배려 차원에서 대변인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구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