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이 계약 하루 전인 지난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볼티모어행을 암시하는 사진을 올렸다.
“윤석민의 가치? 일본인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보단 한 수 아래지만, 올 시즌 아시아리그 FA 투수 가운덴 분명 다나카 다음이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만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스카우트는 한국인 투수 윤석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윤석민은 KBO리그에서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한 특급투수”라며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 베네수엘라전에서 호투하며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던 선수”라고 말했다.
이 스카우트는 “우리 팀에서도 3년 전부터 윤석민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며 “윤석민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KBO리그 KIA로부터 FA로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서 잠시 영입을 고민한 바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볼티모어 홈페이지에 올라온 윤석민 관련 기사.
따지고 보면 샌프란시스코만이 아니었다. MLB의 적지 않은 구단이 윤석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실제 영입전엔 뛰어들지 않았다. 미국 언론에서 윤석민 영입 고려 구단으로 꼽혔던 시카고 컵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도 시쳇말로 간만 봤을 뿐 본격적인 입질엔 나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MLB 구단들은 윤석민 영입에 소극적이었던 것일까.
미국 현지에서 만난 스카우트들은 ‘어깨 부상 의혹’을 꼽았다. 보스턴 스카우트는 “윤석민이 KBO리그에서 우완 에이스였다는 건 인정하지만, 지난 시즌 어깨와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특히나 윤석민의 어깨가 좋지 않다는 루머가 설득력있게 돌면서 그의 영입을 주저하는 구단이 많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스캇 보라스.
익명을 요구한 한 빅리그 스카우트는 “윤석민의 어깨 부상 의혹으로 각 구단이 영입을 주저하는데도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건 큰 문제”라며 “다른 에이전트였다면 고객의 어깨가 생생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쇼케이스’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에이전트 대부분은 구단이 부상 의혹을 제기하면 자발적으로 공개 테스트 무대를 갖는다. 그렇게 하면서 구단들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킨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보라스가 공개 테스트를 미루며 MLB 스카우트들의 의심이 더 증폭됐다는 게 현지 야구계의 중평이다.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포츠에이전트사 직원은 “보라스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건 인정한다”면서도 “그럼에도 내가 윤석민이었다면 ‘거물급 선수’들만 상대하는 보라스 대신 ‘준척급 선수’들을 관리하는 중견 에이전트에게 빅리그 입단 계약을 맡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신수 텍사스 레인저스 공식 입단식에서 스캇 보라스와 악수하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라스가 윤석민 세일즈엔 한 박자 아니 몇 박자 늦게 나선 감이 있다”며 “만약 중견 에이전트였다면 윤석민의 계약을 우선 순위에 두고 보다 열성적으로 뛰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뒤늦게 보라스 측이 “절대 하지 않겠다”는 공개 테스트에 나서며 윤석민 세일즈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보단 다소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민의 볼티모어행이 발표된 14일, 윤석민은 볼티모어의 스프링캠프지인 플로리다 사라소타에 도착, 다음날 있을 메디컬 테스트를 대비했다. 계약 과정은 길고 지루했고, 그 결과 또한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윤석민의 볼티모어행 소식을 들은 추신수는 기자에게 “석민이가 어려운 결정을 한 만큼 볼티모어에서 보란 듯이 제 역할을 해내길 바란다”면서도 “메이저리그에서 일본 투수들에 비해 저평가된 한국 선수들이 실력으로 이런 편견을 모두 이겨냈으면 좋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