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의 27일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석방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재계 인사들은 1년 이상 계속됐던 재벌에 대한 엄혹한 법 잣대와 인식이 최근 다소 누그러졌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회장 등 재벌 총수들에 대한 연이은 집행유예 선고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가 최태원 회장 선고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표를 던지는 인사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난 11일 구자원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워낙 고령(79세)인 데다 건강 악화가 집행유예 선고의 큰 이유가 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점도 허투루 보아 넘길 대목이 아니다. 김승연 회장 역시 건강 악화가 집행유예 선고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까닭에 최태원 회장이 상고심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힘들 것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재원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의 1심 선고 결과도 SK와 최태원 회장을 불안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14일 이재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이 신부전증 말기로 신장이식이 절박한 상태로 알려졌음에도 재판부는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회장의 그것과 다른 선고를 했다. CJ 내부에서는 “총수 부재로 경영 차질의 장기화가 우려된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분위기로 볼 때 이 회장 역시 집행유예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며 “재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 다 풀리지는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태원 회장 석방, 최재원 부회장 실형’이라는 말이 다시 돌고 있다. 이는 물론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김승연 회장의 사례처럼 27일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한 뒤에야 기대해볼 수 있다. 재계 고위 인사는 “이런 선고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며 “총수 형제를 둘 다 구속하거나 둘 다 석방한다는 것은 재판부로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SK 피인수 후 사상 최대를 기록한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최 회장 선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 회장이 하이닉스 경영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2011년 최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고 성사시켰다.
하이닉스는 여러 차례 매각이 실패한 상태였고 2011년 당시에도 SK 외에 뚜렷한 인수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아 매각이 장기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많았다. SK가 인수 의지를 내비친 것에 대해 미심쩍은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를 과감하게 인수했다.
SK 빌딩 전경. 이종현 기자
인수·합병(M&A)시장에서는 SK가 내친 김에 비메모리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매물로 나온 동부하이텍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재계 다른 관계자는 “아무리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결국 오너가 하게 된다”며 “M&A가 자리에 앉아서 결정할 문제도 아닌 터에 오너 구속 상태인 SK가 동부하이텍 인수를 추진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설사 추진한다 해도 최 회장이 석방되고 난 후라는 것.
SK그룹이 임형규 전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장 사장, 서광벽 전 삼성전자 시스템 LSI사업부 부사장을 잇달아 영입한 것도 SK의 동부하이텍 인수설에 힘을 보탰다. SK가 최근 영입한 이들은 시스템메모리 등 비메모리 분야 전문가로서 ‘동부하이텍 인수에 앞서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21일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이 동부하이텍 인수와 관련, “현재로서는 계획 없다”고 밝히면서 소문은 일단락됐다.
행복날개를 단 SK하이닉스실적이 SK에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총수는 1년 내내 구속 상태고, 정유·화학업종은 침체에 빠졌으며 통신은 정부 규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하이닉스가 없었으면 SK는 지난해 웃을 일이 아예 없었을지 모른다. 재계에서 “지난해 SK가 하이닉스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이닉스에서 시작된 날갯짓이 27일 최태원 회장 상고심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