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키스 퍼포먼스를 펼쳐 전 세계 팬들을 놀라게 했다.
마돈나와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자, 그는 그녀를 게이 클럽에 데려갔다. 2010년에 마돈나는 <엘렌쇼>에 출연해 게이 틴에이저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나머지 자살하는 사태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내며, 게이 친구들이 외로웠던 자신을 따스하게 받아주던 10대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 게이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플린이 게이 클럽에만 데려간 건 아니었다. 플린은 주말에 마돈나를 데리고 박물관과 갤러리와 콘서트에 갔고, 마돈나는 플린을 통해 예술 전반을 배웠으며 그를 통해 저항적 사고를 키울 수 있었다. “그는 내게 특별하다고 말해주었고,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력을 가르쳐 주었다. 세속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 말이다.” 마돈나는 플린에 대해 “스승이자 아버지, 상상 속의 애인, 오빠, 온 세상”이었으며 “나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틴에이지 시절의 마돈나와 무용선생 크리스토퍼 플린.
이것은 거침없는 무대는 물론, 최근엔 정치적 발언으로 연결되었다. 얼마 전엔 러시아의 동성애 금지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코멘트를 했던 그녀는 자신이 지닌 슈퍼스타로서의 위치를,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위해 영리하게 이용할 줄 안다. 물론 여기엔 항상 논란이 따르지만, 그녀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2009년 <하드 캔디> 앨범 발매 후 ‘스티키 앤 스위트’ 투어를 떠난 그녀는 루마니아에서 공연을 했다. 그녀는 공연 도중에 동유럽 지역 집시들에게 대한 탄압을 비판했고, “모든 차별에 저항한다”는 말과 함께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가톨릭을 공격했다. 그녀의 이런 말들은 현장에서 야유와 함성을 동시에 이끌어냈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끝까지 전했다.
2010년엔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두 남자가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것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를 믿는다. 그들의 성별과 인종과 피부색과 종교와 성 정체성이 무엇이든 말이다.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우린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우리의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말라위와 전 세계의 진보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법적 결정에 대항할 것이다.” 이런 행동주의는 즉각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3년 3월엔 게이 커뮤니티의 시상식에 그녀는 보이스카우트 복장을 하고 시상자로 등장했다. 동성애를 금지한 미국보이스카우트연맹에 대한 항의의 의미였다. “편견, 동성애 혐오, 증오와 관련된 범죄, 왕따 그리고 그 어떤 형태의 차별도,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공포의 표현일 뿐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증오하고 차별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신이나 종교의 이름을 사용해선 안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혁명을 일으키자며 외쳤다. “지금은 2013년이고 우린 미국에 살고 있다. 자유의 땅이며 용감한 자들의 고향인 미국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 모든 정치적 언급과 사회적 활동도, 이 책 한 권만큼 그녀를 강렬한 게이 아이콘으로 만들진 못했다. 1992년에 나온 사진집 <섹스>. 미국에서만 일주일 만에 150만 권이 팔린 이 책은, 단순한 선정주의 장삿속이 아니라, 외설스러운 사진으로 가득 찬 불온서적은 더욱 아니라, 마돈나가 몸으로 표현한 섹슈얼리티의 권리장전이었다. 다음 주엔 이 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