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청년 실업가였던 김씨는 6공 시절이던 지난 88~89년 당시 CH-47D(시누크) 헬기 구입 사업에서 엄청난 특혜를 누리며 수수료로만 5백48만달러를 챙긴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는 당시 환율로만 따져도 약 43억원에 달하는 거액.
김씨는 이를 기반으로 지난 90년대 이후에는 부동산과 사채업으로 계속 부를 축적했으나, 무기중개 사업에도 계속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지난 88~89년 김영완씨의 중개를 통해 도입된 CH-47D 시누크 헬기와 같은 기종의 훈련 모습. | ||
같은 고교 출신으로 그를 기억하는 한 동창생은 “(김영완씨는) 학교에 다닐 때 약간 ‘건달끼’가 있었으며,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교내 서클에도 가입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전했다.
그의 사업이 외부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삼진통상’ 대표를 맡으면서부터. 이 회사는 무기중개업체였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김씨는 당시 엄청난 무기사업을 성사시키며 어마어마한 거액을 쓸어담았다.
다른 무기중개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삼진통상과 김영완이란 이름은 극히 생소한 그야말로 ‘신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김씨가 한 나라의 거대 무기도입 프로젝트를 떠맡을 수 있었던 군 인맥의 배경에는 예비역 중장 C씨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씨가 거래한 무기는 안전과 테러 대응능력 강화를 위해 지난 87~89년 3차에 걸쳐 미국 보잉사로부터 사들인 시누크 헬기. 김씨가 이 헬기 도입의 중개상을 맡게 된 과정은 이랬다.
원래 이 프로젝트의 국내 중개업체는 W사였다. 당시 W사는 87년 1차로 6대를 사들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2차 도입 시기인 지난 88년부터 아무런 이유없이 W사에서 삼진통상으로 중개업체가 바뀌었다. W사는 기껏 사업을 성사시켜 놓고 1차수수료 1백73만달러만 받고 퇴출됐다는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한 아무런 실적도 없는 삼진통상이 갑자기 등장해서 2, 3차에 걸친 5백48만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특혜를 받은 셈. 지난 93년 국감에서 당시 야당측에 이 같은 의혹을 제보했던 W사 관계자 김아무개씨는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삼진통상이란 회사가 우리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으며, 이 회사의 사장이라고 하는 30대 초반의 김영완 대표를 만나서 그 배후에 C장군이 있음을 알게됐다”고 밝혔다.
문제의 C씨는 육사 11기로, 하나회 핵심멤버. 당시만해도 C씨는 군 내부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C씨와 함께 거론되는 또 한 명의 김씨 군 인맥으로 전직 장성 K씨도 있다. 그는 육사 출신은 아니지만 6공 당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내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꼽힌다. C씨와 K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지난 YS정부 시절 무기중개상으로 언론에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김씨의 군 인맥의 주요 연결고리는 국방부 고위 간부인 Y씨였던 것으로 업계에 알려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육사 출신의 전직 장성 Y씨 역시 국방부 내에서 군수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5·6공과 문민정부를 거치며 상당수의 주요 무기사업에 관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관련자들은 모두 김씨와의 친분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집안과 자신이 모두 민간인 출신이었던 김씨가 이처럼 젊은 나이에 무기사업에 뛰어들어 군 고위 장성과 친분을 맺은 배경에는 그의 장인 장아무개씨가 일정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씨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주 스위스 참사관, 주영 공사 등 공직 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혀 외부 활동 영역이 알려지지 않던 김씨가 80년대 중반 결혼 이후 삼진통상 대표로 갑자기 무기중개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당시 시누크 사업은 지난 90년 당시 야당 의원이던 권노갑씨(당시 평민당 의원)를 통해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권 의원은 그해 11월 국정감사에서 “국방부가 직거래할 수도 있었던 사업을 무기중개상을 끌어들여 수수료를 지불하는 등 국고를 낭비한 점, 무기중개상이 뚜렷한 이유없이 W사에서 전혀 실적도 없는 신생사인 삼진통상으로 바뀐 점 등은 김씨에 대한 특혜가 분명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권 전 의원과 김씨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김씨의 읍소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됐다는 게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권 전 의원의 군 정보통이었던 C씨의 이름이 김씨 주변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 또한 권 전 의원을 통한 것으로 보인다.
YS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93년 국정감사에서 율곡사업 비리가 부각되면서 김씨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감 자료를 보면 김씨는 율곡사업과 관련해 증인으로 선정된 23명의 명단에 들어있다. 그가 국감 증인으로 선정된 이유는 시누크 헬기의 중거래상인으로서 ‘무기도입 경위와 로비 여부 조사’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김씨의 증인 출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시 국방위 소속의 야당 의원이었던 임복진 전 의원은 “당시 율곡사업은 12·12사태와 같이 국감을 벌였는데, 언론에서의 관심은 온통 12·12사태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율곡사업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김씨에 대해서는 전혀 생소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당시엔 증인으로 나오고 안 나오고의 여부가 관심도 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당시 국감 증인으로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자 김씨는 삼진통상을 접고, 지난 93년 부동산 개발업체인 ‘운남매니지먼트’를 설립하면서 부동산 개발과 사채업 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