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원 SKC 회장(왼쪽)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일요신문 DB
SK그룹은 한편으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 직후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 발전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을 위로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없어 어수선하겠지만 그만한 규모의 기업이 오너가 없다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회사 분위기와 문화가 바뀔 우려는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에 총수 부재 상황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년간 SK는 최 회장이 자리에 없었다. 지난해 1월 31일 1심 판결 후 법정구속됐기 때문이다. 당시 SK는 충격은 있지만 경영상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자신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중심의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이미 갖추어놓은 덕분이라는 것. 이 체제는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기본으로 하되,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두고 그 밑에 6개 위원회를 둔 집단지도체제를 말한다. 실제로 지난 1년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는 등 SK는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현재 공식적으로 최태원 회장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인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다. 비록 오너 일가는 아니지만 SK는 지난 1998년 고 최종현 회장 사후 2004년까지 6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손길승 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는 처음으로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겸임했을 만큼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재계 고위 인사는 “김 의장이 과거 손 회장만큼 역할을 해낼지 의문”이라며 “김 의장은 공격적이기보다 관리형 CEO(최고경영자)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SK그룹 오너 일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의 위기는 경영 자체보다는 ‘오너십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먼저 최신원 SKC 회장-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형제가 주목된다.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삼남(장남인 최윤원 회장은 2000년 사망)인 이들은 엄밀히 말해 SK그룹의 적통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룹에 참여하지 못한 채 계열사 경영에 치중하고 있다. SK그룹의 계열분리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최신원 회장은 SK네트웍스 등 SK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왔으며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SK가스·SK건설 등을 묶어 소그룹을 이끌며 계열분리설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룹 회장과 수석부회장이 동시에 징역형이 확정된 상황에서 계열분리를 논하기는 힘들어졌다. 오히려 이들이 구속 수감된 최태원 회장 형제를 대신해 그룹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SK 관계자는 “최창원 부회장은 계열사 대표로서 그동안 최태원 회장과 의견을 자주 나눠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 나선다는 것은 너무 앞서간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SK그룹은 비록 지주회사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기형적인 구조다.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은 SK C&C를 통해 지주회사인 SK(주)를 지배하고 있다. SK(주)의 최대주주는 지분 31.82%를 보유하고 있는 SK C&C이며 이 회사 최대주주가 바로 최태원 회장(지분율 38.00%)이다. 최 회장의 SK(주)의 지분은 0.02%에 불과하다. 이 같은 구조 탓에 SK(주)와 SK C&C의 합병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 C&C의 2대주주가 바로 최기원 이사장(10.50%)이다. 지분율로만 보면 최 이사장이 오빠인 최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에 나설 수 있다. 만약 최 이사장이 그룹 경영에 나선다면 이재현 CJ 회장이 구속되면서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이 그룹 경영과 대외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과 흡사한 모습을 띠게 된다. 최 이사장은 CJ 지분이 거의 없는 이 부회장과 달리 만만찮은 지분도 있다. SK 관계자는 그러나 “행복나눔재단은 그룹과 별개 조직이나 마찬가지며 그룹 경영과 겹치는 부분도 거의 없다”며 최 이사장의 부상 가능성을 부인했다.
한편 SK 관계자는 “결과가 나쁘다보니 별의 별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마련한 것이 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집단지도체제”라고 강조하며 “이 체제는 절대 임시방편으로 만든 게 아니라 앞으로 대기업이 지향해야 할 모델이다. 회장 형제를 대신할 오너 일가의 등장과 같은 관측은 무리”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