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에서 훈련 중인 임창용은 자신감을 회복한 상태였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선수도 모르는 합의가 있을 수 있나.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할 경우 어디든 팀을 찾아 떠나야 하지만, 이미 삼성과 복귀를 합의했다는 내용은 처음 듣는 말이다. 3월 한 달 동안 시범경기를 치르고, 그 사이에 내 거취가 정해질 것이다. 시즌 개막을 25인 로스터에 포함돼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만약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한다면 그때 가서 거취와 관련해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임창용은 지난 한 해 동안 루키부터 시작해서 싱글 A, 하이싱글 A, 더블 A, 트리플 A를 모두 거치며 속성으로 마이너리그 경험을 했다. 마이너리그 팀이 속한 지역의 특성상 대부분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시골로만 돌아다녔고, 자신과 20년 넘게 차이나는 어린 선수들을 상대로 공을 던져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꿈에도 그리던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5이닝 6안타 7볼넷 5삼진으로 3실점하며 평균자책점 5.40을 기록했다.
“빅리그 복귀 당시에는 구단과의 계약 문제로 굉장히 힘든 일들을 겪고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몸을 잘 만들어 가다가 빅리그 복귀 여부로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컨디션 난조에 빠지기도 했다. 막상 시카고 컵스 홈구장인 리글리필드 마운드에 올라서보니 정신이 멍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창용은 지난 연말 5년 동안 인연을 맺었던 에이전트를 교체했다. 형처럼 따랐던 터라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에이전트가 시카고 컵스와 계약한 내용을 나한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난 2013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내다 시즌 중에 콜업이 될 줄 알았고,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2014년에는 당연히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시작하는 줄 알았지만, 지난해 빅리그 데뷔 시기를 놓고 구단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가 알고 있던 계약과 실제 계약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 에이전트와 헤어졌고, 지금은 오승환을 맡고 있는 스포츠 인텔리전스의 김동욱 대표와 일을 하고 있다.”
시카고 컵스는 지난 12월 3일, 임창용을 논텐더(계약 의사 없는 사실상 방출을 의미)로 풀었다는 발표를 했다. 임창용이 올 시즌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시작하는 줄로만 알았던 팬들한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러나 임창용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빅리그 데뷔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빚을 당시 에이전트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했던 말이 빅리그로 올라갈 경우 12월 논텐더로 풀리는데 곧바로 다시 메이저리그에 들어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난 구단의 논텐더 발표가 있을 때 신경 쓰지 않았다. 곧 메이저리그 캠프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구단은 이미 그 에이전트에게 2013 빅리그 마운드를 밟게 될 경우 이후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하더라. 선수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새로운 에이전트가 나서 구단과 이 부분을 해결했고, 뒤늦게 메이저리그 초청 선수 신분으로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다소 복잡한 마음을 안고 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한 임창용은 3월 한 달 동안 자신의 야구인생을 위해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시범경기에 나가 최고의 구위를 선보임으로서 릭 렌테리아 감독의 눈을 사로잡아야만 한다.
“지난겨울 괌에서 오승환과 땀을 흘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어느 해보다 몸 상태가 좋고, 구위도 70~80% 정도는 올라왔다고 본다. 라이브피칭, 청백전을 통해 더욱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렇게만 가준다면 3월 중순 이후의 등판부터는 만족스런 피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은 뒤로 물러 설 수가 없다. 오직 앞만 보고 갈 뿐이다.”
임창용은 ‘만약’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3월 말까지 빅리그 로스터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일본이나 한국으로의 복귀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임창용은 메이저리그의 후지카와 규지가 부상으로 재활 중이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한신 타이거즈 출신인 후지카와 규지(오승환이 이 선수의 등번호 22번을 달고 있다)는 임창용이 야구르트에서 활약할 당시 일본 내 구원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상대이기도 하다.
“내가 언제 쉽게 간 적이 있나. 한국에서 일본을 갈 때도 그렇고 일본에서 미국으로 오기도 어렵기만 했다. 야구인생의 마지막은 이제 좀 편하게 가고 싶은데, 운명인지 어떤 건지,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임창용의 읊조림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