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법원의 판례와 추세로 볼 때 황혼이혼은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 될 듯싶다. 나이나 결혼기간이 이혼 재판의 참고사항은 될지 모르지만 주요한 판단사항이 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혼이혼 소송에 대한 법원의 태도는 엇갈린다.
▲ 남자들에겐‘늘그막에 고생문이 활짝 열리는’ 황 혼이혼의 증가세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가 부장적인 권위에 짓눌려 살아온 할머니들이 뒤 늦게나마 법원에 ‘인생역전’을 호소하고 있는 것.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
최근 서울가정법원에 황혼이혼 소송을 제기했던 50대 주부 A씨의 경우는 법원이 원고의 뜻을 받아들여 이혼을 판결했다.
주부 A씨는 지난 65년 남편과 결혼한 이후 40년 남짓한 결혼생활을 하다 최근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다섯살 위인 남편의 잦은 폭언과 폭행.
결혼생활 동안 2남2녀의 자식도 얻었지만 남편은 특별한 이유없이 A씨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고 A씨를 길바닥에 끌고다니는가 하면 자식들에게까지 가위와 재떨이 등으로 상처를 입혔다.
급기야 두 딸은 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가출까지 하게 됐고 A씨도 다량의 약물을 복용, 자살까지 시도했었다. 하지만 남편의 폭행은 그칠 줄 몰랐고 결국 법원의 심판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송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 8단독 고연금 판사는 지난달 27일 원고 A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물론 위자료 1천만원과 재산의 1/4을 분할해주라는 결정도 함께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는 이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며 “파탄에 대해선 40여년간 부부로서 생활해 오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혼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다 더 큰 책임은 상습적인 폭언 및 폭행을 계속해 온 피고 남편에게 있다”고 밝혔다.
[패소사례]
이와는 반대로 ‘남편이 경제권을 주지 않는다’며 이혼소송을 제기했던 B씨는 패소한 케이스.
올해 70세의 B씨는 지난해 ‘남편이 경제권을 쥐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며 가출한 후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신동훈 판사는 지난 10일 “가출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쓴 B씨에게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만큼 이혼을 허락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쌀값을 제외하고 먹고 입는 돈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 대접도 하지 않으며 비도덕적인 욕설과 모욕을 계속했다’는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남편이 B씨에게 다소 부족한 생활비를 지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 사실만으로는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특히 “생활비를 부족하게 지급하고 부인의 경제적인 재량을 인정하지 않은 남편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근본책임은 남편과의 불화를 슬기롭게 수습하지 못하고 가출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한 원고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한 서울가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가정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파탄주의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 민법 제840조 제6호는 가정파탄에 대해 ‘기타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법원은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홍성규 법률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