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16일자 <동아일보> 1면 ‘문제’의 기사(왼쪽)와 24일자 정정·사과 보도 부분. | ||
<동아일보>는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의 말을 따 “윤씨가 15일 검찰조사에서 로비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건네준 20여 명의 정치인 이름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며 “윤씨는 이날 김원기 민주당 고문,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이해찬 신계륜 민주당 의원과 지난해 대선 당시 야당 수뇌 등에게 로비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윤씨는 또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형이 운영하는 S벤처기업에는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파문이 일었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거센 폭풍을 몰고온 <동아>의 이번 보도는 그러나 16일 당일 실명거론된 당사자들이 명백한 오보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서고 언론계에서도 기사에서 드러난 취재원이 익명의 ‘여권 핵심 관계자’ 하나뿐이고 해당 정치인들의 반론도 전혀 없어 기사요건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면서 오보 공방으로 번졌다.
이름이 거명된 당사자들은 16일 오전 일제히 <동아일보>의 보도내용을 전면 부인하면서 <동아>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것임을 선언했다. 검찰 역시 윤씨를 소환조사한 것은 맞지만 윤씨가 이 같은 진술을 한 적은 없다고 오전 11시 서울지검 3차장 검사실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혔다. 청와대도 오전 11시 윤태영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에서 “너무나 악의적인 보도”라는 입장을 밝혔다. <동아>는 16일 보도 이후 주말인 19~20일께까지는 거의 사면초가에 몰리는 분위기였다.
특히 민주당 김원기 고문 지지자들은 동아일보사 사옥을 항의방문해 정정보도를 요구했으며 <동아>는 추가 사실확인을 거쳐 오보일 경우 23일자에 정정보도를 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16일 이후 기자는 사실 확인하기 위해 <동아일보>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동아>는 보도 직후부터 내부적으로도 오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 편집국 간부는 17일자에 후속보도가 나간다고 밝혔지만 추가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정정이 나간 24일자까지 <동아>는 어떠한 추가적인 사실도 내놓지 못했다.
<동아> 오보 파문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주말을 지나며 더욱 확대됐다. <동아> 오보가 낳은 ‘음모론’은 처음엔 실명 거론된 정치인들이 모두 민주당 신주류라는 이유로 갈등관계 있는 구주류에서 <동아>에 흘린 것 아니냐는 것부터 시작됐다.
당연히 구주류는 즉각 반발했고 뒤이어서는 굿모닝시티 파문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정대철 대표측이 ‘물귀신작전’으로 흘렸다는 소리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청와대의 386 참모들이 흘렸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청와대 386 배후설은 때마침 청와대 민정수석실 박범계 비서관이 기사를 작성한 <동아일보> Y기자와 보도가 나가기 전날 밤 전화통화를 한 것이 확인되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박 비서관이 Y기자와 고교동문 사이라는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 동아일보사옥 | ||
청와대 386 배후설은 당사자로 지목된 박 비서관이 즉각적으로 반박 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서자 어느 정도 수그러드는 조짐을 보이다가 때마침 터진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세대혁명론’ ‘집권당 사무총장 희망론’ 발언을 발판으로 <동아> 오보와는 별 상관이 없는 386의 자질론으로까지 발전했다.
박 비서관은 22일 낸 반박자료에서 ‘<동아> 기자와의 통화가 진지한 사실확인이 아니라 정보지에서 비슷한 이름을 본 것 같다고 언급한 수준이었다’는 요지의 입장을 밝혔다.
박 비서관은 “청와대 직원들과 회식을 하고 있던 자리에서 <동아> 기자에게 전화가 왔었고 굿모닝시티 윤창렬씨가 검찰에서 정치인의 실명을 거론했다는 것을 전제한 뒤 들은 바가 있느냐는 식으로 물어 나도 정보지에서 이름을 본 것 같다” 정도로 말했다는 요지의 입장을 밝혔다. 박 비서관의 이 같은 해명이 나오면서부터는 국면이 다시 바뀌어 박 비서관은 최초 사실을 확인해준 취재원이 아니라 보조적인 2차 취재원이었으며 그렇다면 과연 애초의 1차 취재원은 누구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일각에선 1, 2차 취재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박범계 비서관의 언급만으로 기사가 나간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동아>는 기사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취재원의 지위와 역할을 고려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는데 박 비서관이 청와대에선 검찰과 가장 관련성이 있는 민정수석실 소속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의혹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또 취재원이 둘이라면 사실확인을 두 군데에서 한 셈으로 더욱 신빙성을 높일 수 있는데 왜 기사에는 ‘여권 핵심 관계자’라고만 해서 하나의 취재원만 드러냈느냐 하는 점도 의문으로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결국 24일자에 유례를 찾기 힘든 수위로 1면에 정정과 사과 보도를 냈다. <동아>는 먼저 기사의 모든 내용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사실이 아님을 인정한 뒤 당사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취재원의 지위와 역할로 미루어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문구도 포함했다. 법적으로 따지면 언론보도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보도 당시에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오보의 면책사유가 있다. <동아>는 이후 소송에서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동아> 보도는 결국 오보로 판명됐고 이제 관심은 과연 취재원이 누구였는가,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이번 <동아일보> 오보 파문은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한 무책임한 오보에 대해 언론은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성의 계기가 될 것 같다.
이호석 미디어오늘 기자 arisan@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