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바로 옆에 앉은 현오석 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에 대해 스스로 수차례 경고를 해왔음에도 인적 쇄신은 하지 않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월 6일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을 빚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하는 데 6일밖에 안 걸렸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거론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변화를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최근 박 대통령이 보여준 신속한 인사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으로까지 개각설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한마디로 경제팀을 보호하기 위해 해수부안행부 장관 인사를 서둘렀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주영 장관과 강병규 안행부 장관 내정자의 공통점은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검증된 사람이라는 점”이라며 “장관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이전과 달리 인사를 급하게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가 안행부 장관 내정자를 발표했을 때 새누리당 내에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강병규가 누구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강 내정자가 박 대통령과 인연도 없는 전형적인 퇴직 내무 관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 최근 박 대통령의 ‘속전속결식’ 인사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박근혜답지 않은’ 신속한 인사는 바꿔 말하면 ‘박근혜다운’ 미봉 인사 스타일에 전혀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문제가 있는 인사를 교체하고 전면적인 쇄신에 나서기보다는 소위 ‘인사청문회 트라우마’에 빠져 땜질식 처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미봉 인사 스타일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현오석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능력 부족과 부적절한 언행으로 질타를 받아 온 ‘현오석 경제팀’에 대해 박 대통령 스스로도 수차례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경고를 해왔으면서도 인적 쇄신은 하지 않고 있다.
현오석 경제팀이 물의를 빚은 가장 최근의 사례는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전월세 대책이다. 정부는 전월세 임대인에게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 1주일 만에 소규모 임대인에 대해서는 과세를 유예하겠다고 정책을 뒤집었다. 이마저도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박 대통령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과 국민에게 미치는 파장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영 해수부 장관, 강병규 안행부 장관 내정자.
현오석 경제팀은 지난해 8월 세법 개정안 발표 때에도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가며 시장의 불신을 자초했다. 연 소득 3450만 원 이상인 근로자부터 증세를 하려다 박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로 불과 하루 만에 증세 기준점을 연 소득 5500만 원으로 높였던 것이다. 주택 취득세 영구 인하 정책도 지난해 7월 발표 당시 ‘소급적용 불가’ 입장을 내놨다가 11월 소급적용을 허용함으로써 이른바 ‘거래 절벽’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특히 공공기관 개혁에서 실적 부진을 이유로 박 대통령에게 지적을 받았던 현 부총리는 올해 들어서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공개 질타를 당하기도 했다. 신용카드사 정보유출 사건 당시 엉뚱하게 소비자 책임론을 거론하며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개회의에서 대놓고 경고를 했고, 현 부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내놔야 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 조각 과정에서 1차 후보자들의 낙마로 인해 갑작스럽게 장관을 맡게 된 인사들 역시 경제팀과 함께 미봉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실제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와 함께 물러나기로 돼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장관 업무를 수행 중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으로 낙점했던 김병관 전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당시에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는 등 한반도 긴장이 극에 달했던 터라 김관진 장관이 급한 대로 업무를 계속 하는 데 대해 여론의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적 인사’가 1년 넘게 지속되자 군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미봉 인사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는 게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윤창중 전 대변인, 윤진숙 전 장관 등은 진작부터 경질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사람들”이라며 “결국 이들은 정권에 엄청난 타격만 입히고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재계 관계자도 “현오석 경제팀은 이미 ‘식물 경제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시장의 신뢰를 못 받는 경제팀으로 어떻게 주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