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로에서 해변까지는 100m가 족히 넘는 거리로 음주운전을 했다 하더라도 고의가 아닌 이상 차가 진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2일 찾은 여수 웅천동의 해변공원은 고급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들어선 해변도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인공 해변가는 육안으로 봐도 해안도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차량이 추락한 현장을 찾기 위해 해변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모래사장과 이어지는 나무계단의 파편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계단은 승용차 폭 만큼의 너비로 파손되어 있었다. 해변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갑자기 차가 들어와 직진하더니 해변으로 향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가 난 지난 6일은 아내 임 씨의 생일이었다. 조 씨 부부는 임 씨의 생일을 맞아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 인근 식당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부부는 이동하기 위해 차에 탑승했다. 그러나 조 씨 부부가 탄 차량은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던 조 씨 부부의 차는 다시 유턴을 한 다음 식당이 있던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해안도로 중간 지점에서 조 씨 부부가 탄 차량이 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조 씨 부부가 거주하는 아파트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조 씨 부부가 탄 차는 앞부분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조 씨 부부의 차가 바다에 침몰하는 것을 목격한 행인은 소방서에 구조요청을 했다. 그사이 남편 조 씨는 차에 있던 골프채를 이용해 차 유리를 부수기 시작했다.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편 조 씨는 차에서 빠져나와 머리 하나 정도만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소방대원은 조 씨를 뭍으로 데려나온 다음 차 안에 갇혀 있던 부인 임 씨를 구조해 응급조치를 했지만 임 씨는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 조 씨는 골프채로 유리창을 부수는 상황에서 손에 상처를 입는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출동했던 여수해양경찰서는 사건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남편 조 씨에게 사고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남편 조 씨는 여느 교통사고 피해자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사고가 나면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설명을 하려는 피해자와는 달리 조 씨는 부인이 운전했다는 진술 외에는 입을 다물었다.
조 씨 부부의 차가 바다에 추락하는 과정도 의문이었다. 차가 침몰한 해변가는 인도와 관리사무소를 지나 나무계단과 모래사장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구조였다. 조 씨 부부의 차가 지나던 해안도로에서 해변까지는 100m가 족히 넘는 거리로, 음주운전을 했다 하더라고 고의가 아닌 이상 차가 진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해경의 음주측정 요구에 곧장 응하지 않는 남편 조 씨의 의뭉스러운 태도도 의심을 샀다. 이후 이뤄진 음주 측정 결과 조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이었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들이 이어지자 해경은 밤새 탐문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조 씨 부부가 술을 마시던 중 인근 식당에서 크게 다툰 것을 확인했다. 해양경찰서 경무기획과 관계자는 “큰 고성이 오가면서 물건을 던졌다고 한다. 핸드폰도 다 부서진 상태였다”며 “차량 블랙박스 분석에서도 조 씨 부부가 차 안에서도 계속해서 싸운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집중 추궁 끝에 남편 조 씨는 사고 다음 날인 7일 자신이 운전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해양경찰서 수사과 관계자는 “부인이 운전을 했다는 조 씨의 주장과 달리 조 씨가 운전대를 잡은 CCTV 등이 발견돼 조 씨를 긴급체포했다”고 말했다.
포크레인 등 중장비 대여 업체를 함께 운영하던 조 씨 부부는 최근 회사의 자금난과 가정불화로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값 비싼 외제차를 몰고, 여수 시내의 최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조 씨 부부였지만 최근 경기 불황으로 400만 원에 달하는 중장비 기사들의 임금도 나눠서 지불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여기에 조 씨의 부인 임 씨의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두 부부의 싸움은 더 잦아졌다. 해경 경무기획과 관계자는 “부인 임 씨 생일이었던 지난 6일에도 임 씨는 조 씨와 조 씨의 식구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섭섭함을 표했다고 한다”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싸움이 차에 올랐을 때까지 이어진 것 같다. 조 씨도 부인을 구조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고 진술했지만 더 정확한 사실관계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남편 조 씨는 살인 혐의 등으로 긴급체포돼 영장이 발부된 상황이다. 현재까지 정황으로는 조 씨가 홧김에 우발적인 사고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지만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보험수급자 명의나 여자관계에도 수사방향이 맞춰지고 있다. 해경 수사과 관계자는 “남편 조 씨가 사고 다음 날까지 혐의를 부인하다 하나둘씩 증거를 제시하자 인정했다”며 “어떠한 예단도 하지 않고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여수=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