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당시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광주지법으로 출석하는 모습. 허 전 회장은 수백억대의 벌금과 국세 등을 내지 않고 도피한 혐의 등으로 인터폴에 수배됐으나 뉴질랜드로 출국 후 호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선고된 ‘일당 5억 원’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특별세무조사 끝에 508억 원의 탈세 사실과 회사돈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1심인 광주지법은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 508억 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벌금 508억 원을 내지 않을 경우 일당을 2억 5000만 원으로 계산해 203일간 노역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2011년 12월 열린 2심 광주고법의 재판 결과는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으로 ‘감형’이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재 큰 논란이 일고 있는 벌금 254억 원에 대한 일당 노역비도 5억 원으로 높였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일반인과 ‘범털’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다. 예컨대 일반인이 음주운전 등으로 벌금형을 받을 경우 치러야 하는 노역은 5만 원인 데 비해 재벌 총수들의 노역 일당은 억대를 넘어서기가 다반사다(박스 기사 참조).
그런데 이번 허 전 회장의 경우는 재벌 총수보다 훨씬 더 높은, 역대 최고의 몸값을 기록했다. 노역 일당 5억 원은 지금까지 나온 법원 판결 중 최고 액수다. 2심 재판부는 허 전 회장에게 노역장 유치 일당을 5억 원으로 책정하고 49일만 유치장에서 살고 나오면 254억 원이라는 돈을 탕감받도록 하는 ‘파격적인’ 판결을 해 당시 큰 논란이 일었다. 일반 서민의 경우 90% 이상 판결이 노역 일당을 5만 원으로 책정한다. 법원이 허 전 회장에게 일당을 일반인보다 무려 1만 배나 높게 계산한 것은 명백한 ‘무전유죄 유전무죄 판결’이라는 게 일반적인 여론이다.
지난달 광주지검 상황실에서 허 전 회장의 벌금·세금 징수 관련 기관협의회의가 열려 관계기관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특히 1심-2심 재판장은 모두 모두 광주·전남지역에서만 근무해온 ‘향판’이었고 허 전 회장은 지역의 대표적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판결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허 전 회장 사건은 현재 판결이 내려진 지 2년이 넘도록 벌금형은 집행되지 않고 있다. 허 전 회장이 2010년 항소심 재판 선고가 이뤄진 하루 뒤에 뉴질랜드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허 전 회장이 이달 중으로 귀국할 것이며 벌금 미납액을 내지 못해 구치소에서 노역을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일당 5억’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허 전 회장 측도 ‘거액의 벌금을 낼 형편이 안 돼 노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재벌 봐주기 판결’을 원천봉쇄하는 법이 국회에서 추진 중이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일명 ‘재벌 봐주기 5억 원 일당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노역장 ‘일당’이 아무리 많아도 50만 원을 넘지 않게 하자는 내용이다. 이상규 의원실의 허엽 보좌관은 “재벌에 대한 법의 잣대가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에 탈세와 횡령이 끊이지 않는다”며 “법 도입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에 경종을 울리겠다”고 밝혔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허 전 회장처럼 벌금 250억 원을 선고받은 사람은 유치장에서 13년 넘게 지내야 한다.
서윤심 인턴기자 heart50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