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특정계파는 없지만 주요 보직을 ‘스카이’ 대학 출신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타 다른 사회 조직과 다를 바 없다. 사진공동취재단
‘외풍’이 작용해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검사와 달리 법관의 인사패턴은 단순하게 순환이 이뤄져 예측이 가능하다. 법원 내에서 정치적인 요소가 고려되는 인사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대법관 정도다. 현행 법원조직법상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권리이지만, 임명은 대통령이 하도록 규정돼 있다. 통상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사전조율을 거쳐 후보자를 지명하지만,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의견이 맞지 않아 임명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법관들은 인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긴다. 검사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강조돼 개개인의 검사보다 조직이 우선시되지만, 법관은 재판의 독립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긴다. 수사방향을 검찰총장이 설정하고 일사불란하게 검찰조직이 움직이는 것과 달리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특정 사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다. 때문에 법관 승진 자리를 놓고 특정 지역이나 학교 출신의 법관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법관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일이다.
이러한 시도를 하려다 조직의 비토를 받은 대표적인 사례가 지대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다. 서울 경동고-고려대 출신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건설국장,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하며 사법연수원 13기에서 일찌감치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던 지 부장판사는 2011년 대법관 인선에서 탈락하자 자신이 추천받지 못한 서운함을 동료 고려대 출신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논란이 일었다.
지 부장판사는 이메일을 통해 “이번에 고려대가 유력하다는 말에 따라 동문회에서 여러모로 많이 노력했고, 배석 판사들까지 추천했지만 현직 13기는 아직 이르다는 뜻인지 추천조차 받지 못했다”며 “내년까지 한번 더 성원해 주시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고 호소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대학 동문들에게 대법관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질타가 이어졌고, 지 부장판사는 결국 다음해 대법관이 4명이나 교체됐는데도 선택을 받지 못했다.
대법관 후보로 꼽히던 지 부장판사가 이메일 사건을 계기로 대법관에서 이미 멀어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실제 2012년 8월 양승태 대법원장은 ‘비서울대 출신 대법관’으로 지 부장판사가 아닌 김창석 대법관을 선택했다. 김창석 대법관 역시 지 부장판사처럼 고려대 출신에 사법연수원 13기 출신이다.
하지만 ‘출세’를 위한 특정 계파가 없을 뿐, 법원의 주요 보직을 ‘스카이’ 대학 출신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타 다른 사회 조직과 다를 바 없다. 사법부의 중추 역할을 하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던 서울 시내 중위권 대학 출신의 한 판사는 ‘서울대 출신 판사들 사이에서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지금은 서울지역을 벗어나 근무하고 있는 이 판사는 “앞으로 출세하기는 힘들어졌지만, 서울대 출신의 소위 잘나가는 판사들 사이에서 숨쉬기 어려웠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내에서도 가장 우수한 엘리트 법관들로 구성되는 조직으로, 법원의 주요정책을 결정하고 인사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이나 대법관 인선에서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은 가장 중요한 인사평가 척도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이선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