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나선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여자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스캔들은 이어졌다. 타블로이드 신문 <더선>은 결혼 후 다이애나가 예전 남자친구인 제임스 길비와 나눈 전화 통화가 녹음된 테이프를 입수했고, 그 내용을 공개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찰스와 카밀라의 통화 내용은 <투데이>와 <미러>에 공개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도청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사건은 황실의 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영국 잡지
당시 그녀는 휴이트와 헤어지고 심장 전문의로 이름 높았던 하스낫 칸과 사귀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1996년 5월 크리켓 선수 출신의 파키스탄 정치가 임란 칸의 초청을 받아 파티에 갔는데, 그곳에서 임란 칸의 친척인 하스낫 칸을 만나게 된 것. 1997년 6월에 헤어지긴 했지만, 하스낫은 다이애나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1997년 7월, 그녀는 이집트의 억만장자인 모하메드 알-파예드의 아들인 도디 파예드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 당시 그녀는 두 아들과 함께 뉴욕의 롱 아일랜드에서 여름을 보내려 했지만 황실 보안 책임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때 도디 파예드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지중해와 남부 프랑스 여행을 제안했다. 모하메드는 단지 그 여행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주고 요트를 구입했다.
왼쪽부터 하스낫 칸, 도디 파예드.
12시 23분, 알마 다리 아래의 지하 차도로 접어들었고 균형을 잃은 차는 기둥을 들이받았다. 따라오던 파파라치들은 속도를 늦추고 황급히 달려갔고, 몇 명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12시 30분에 경찰차가 도착했고, 현장에 있던 7명의 파파라치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1시에 차에서 꺼내진 다이애나에겐 심장마비 증상이 왔고, 1시 18분에 도착한 앰뷸런스는 심폐 소생술로 일단 급한 고비는 넘겼다. 1시 41분에 현장을 떠나 2시 6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다이애나는 겉으로는 큰 상처가 없어 보였지만, 내상이 너무 컸다. 심장이 오른쪽에 와 있을 정도였고 폐정맥과 심막이 찢어진 상태였다. 1997년 8월 31일 새벽 4시, 다이애나 스펜서는 세상을 떠났다.
이혼하기 전의 다이애나 가족들. 왼쪽부터 윌리엄 왕세손, 찰스 황태자, 해리 왕자, 다이애나 비. 연합뉴스
에어백 덕에 보디가드 리스-존스는 목숨을 건졌지만 운전자와 도디 파예드와 다이애나가 모두 목숨을 잃은 사건. 시속 105킬로미터였으니 일부 언론이 전한 것처럼 파파라치와 속도전을 벌일 정도로 과속은 아니었고, 프랑스 경찰은 18개월에 걸친 조사를 거쳐 1999년에 운전을 했던 헨리 폴이 음주 상태였고 항우울제까지 복용하면서 제대로 운전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사고가 났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도디 파예드의 아버지인 모하메드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영국 황실이 영국의 정보기관인 MI6와 결탁해 다이애나를 죽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데일리익스프레스>도 꾸준히 타살설을 제기했다. 결국 2004년 영국 경찰은 특별반을 구성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헨리 폴의 음주 운전이 원인이라는 것.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수많은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다음 주엔 다이애나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주장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