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대표(왼쪽), 정형근 의원 | ||
한나라당의 공천 승부수로는 최병렬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과 정형근 의원의 공천 배제 방안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1차 서류심사를 통해 모두 70개의 지역에서 후보자를 사실상 결정지었다. 이 중 부산의 정형근 의원과 경남 거제의 김기춘 의원 등이 포함돼 시민단체들로부터 ‘반개혁공천’이란 지적을 받았다. 정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 은폐의혹을 받고 있고, 김 의원은 92년 초원복집에서 지역감정 선동 발언을 했다는 점이 시민단체로부터 문제시됐다.
한나라당은 특히 70개 지역 공천과정에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공천혁명의 대의도 크게 손상을 입었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책이 공천 물갈이였는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입도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영입 제의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사했고, 반면 한나라당에 노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당 지도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한나라당은 이대로 공천이 진행되다가는 국민의 주목을 끄는 데 실패할 것이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한나라당이 공개면접 토론회를 통해 33세의 여성부대변인을 부산 연제에 공천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의 발로로 해석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면접 토론회를 20여 개 지역으로 확대해 신인 발굴을 가속화해갈 방침이다.
그럼에도 토론회에서 뽑힌 신인들은 대부분 인지도가 약하거나 전국적인 인물들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크게 주목을 받는 데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에 위촉된 소설가 이문열씨는 “한나라당이 지금 추세로 가면 1백 석은 못 건지고, 잘해봐야 80석이나 85석 정도 건져 4년 뒤엔 자민련 꼴 날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결국 특단의 방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병렬 대표의 불출마 선언은 외곽 참모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 대표를 보좌하는 개인 비선라인은 최근 “지역구인 강남갑에 출마않는 것은 물론 비례대표에도 나서지 말아야 한다”면서 “최 대표가 총선승리를 이뤄낸 뒤 혹시 있을 서울지역 보궐선거에 나가면 된다”는 논리를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대표의 불출마 선언은 한나라당에 약 5% 정도의 지지율 반등을 가져다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비해 거의 10% 가까운 지지율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최 대표의 불출마 선언으로 지지율 반등이 이뤄지면 열린우리당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 대표의 일부 참모들은 최 대표가 비례대표 끝번으로 배수진을 쳐야 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최 대표도 당초 비례대표 공천에 마음이 기울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대구 출마 등으로 정당 지도부의 희생이 요구되는 분위기 탓에 좀더 충격적인 승부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왼쪽)은 “단수 추천된 인물도 바꿀 수 있다”며 정형근 의원의 교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 ||
이럴 경우 한나라당의 물갈이 공천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고, 공천에 탈락한 현역의원들의 반발도 무마시키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이 구상하는 2단계 공천 승부수의 핵심은 정형근 의원의 공천탈락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이미 정 의원을 1단계 서류심사에서 통과시켜 주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가 있음에도 정형근 의원을 단수 추천함으로써 최 대표가 정 의원에게 졌던 빚은 다 갚았다”면서 “이젠 정 의원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정 의원이 알아서 불출마 선언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 이문열씨는 정형근 의원의 공천을 겨냥, “잘라야지 생각했던 사람들도 막상 공천을 받게 되더라”면서 공천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도 “단수 추천된 인물을 다시 바꿀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은 최근 “5·6공 시절에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또 개인적으로도 섭섭할지 모르지만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순 없지 않느냐”고 말한 바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시민단체가 본격 낙선운동에 돌입할 경우 정형근 의원 문제가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을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정 의원 한 명 때문에 도매금으로 잘못된 공천이란 오명을 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시각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정 의원이 불출마를 거부할 경우 최악엔 최종 공천에서 낙천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한 관계자가 전했다. 물론 그 전 단계로 불출마를 좀더 강력히 권고한다는 것이다.
정 의원도 이 같은 기류를 감지한 듯, 당에 섭섭한 감정을 토로했다. 정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나의 거취와 관련해 당에 섭섭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오히려 “최 대표와 홍사덕 총무가 강남을 버리고 비례대표(끝번)로 나가야 한다”면서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대구 출마로 한 방에 한나라당을 날려버렸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없다”고 지도부에 역공을 취했다. 정 의원은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출마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정 의원 공천을 배제할 경우 한바탕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최종 공천이 확정되는 2월 중순쯤 파격적인 공천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천 승부수가 과연 뜻대로 순조롭게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