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원조교제를 빌미로 돈을 뜯은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10대 소녀를 합숙시키면서 성매매를 알선한 기업형 조직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채팅을 통해 사냥감을 찾는 ‘알선조’,‘교육조’, ‘협박조’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너희들은 그저 아저씨들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대신 수익의 20%를 대가로 줄게.” 1백여 명의 성인 남성들을 울린 ‘기업형 언조족’들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과 10범인 서씨와 중학교 중퇴생인 최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6월. D포털사이트 전과자 게시판을 통해서였다. 서씨는 이곳에서 “목돈을 만질 수 있게 해주겠다”며 최양과 친구들을 유혹했다. 최양의 입장에서도 손해될 게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서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단 의견일치를 이룬 6명은 역삼동의 한 모텔을 은신처로 정하고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곳에서 두 달여에 걸친 치밀한 준비를 통해 범행을 모의했다. 특히 최양 등은 원조교제에 필요한 교육까지 별도로 받았다. 전열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이들은 첫 만남 후 두 달 뒤인 지난 8월15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철저하게 분담했다. 원조교제를 원하는 남성들을 알선하는 것은 서씨의 몫. 서씨는 채팅 게시판에 미끼를 던져놓고 사냥감이 물리기를 기다렸다.
얼마 뒤 김아무개씨(36)가 서씨의 덫에 걸려들었다. 서씨는 25만원을 주고 성관계를 갖기로 김씨와 합의했다. 흥정이 끝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최양이 투입됐다. 최양은 역삼동의 한 모텔에서 김씨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단순한 원조교제 알선과 매춘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사업은 성관계 이후부터 시작되기 때문. 최양은 곧바로 김씨의 휴대폰 번호를 신씨에게 알려줬다. 신씨는 이동통신회사 대리점에 근무하고 있던 하아무개씨(20)를 통해 김씨가 유부남임을 확인했다.
김씨가 유부남인 사실을 확인한 뒤 협박조인 정아무개씨(28)가 나섰다. 정씨는 김씨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협박을 가했다. “흥신소 직원인데 고객의 의뢰를 받아 뒷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조교제 현장을 발견했다”며 접근했다.
김씨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정씨의 본격적인 협박이 시작된다. 정씨는 “유부남이 그러면 되느냐. 직장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 눈감아 줄테니 수고비를 달라”며 김씨를 협박했다.
김씨는 할 수 없이 정씨에게 3백만원을 건네줬다. 그러나 정씨의 협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정씨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정씨가 한 달 동안 뜯긴 돈은 3천만원. 협박을 견디다 못한 김씨는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 이외에도 10여 명이 비슷한 수법에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분 노출을 꺼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피해자 중 상당수는 자영업을 하는 30∼40대 남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신씨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한 하씨가 이동통신사에 위장취업한 신씨의 조직원이었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동통신회사에 취업했다가 그만두는 것을 지난 몇 달간 일곱 번이나 반복했다”며 “김씨가 유부남인지 확인하기 위해 하씨가 빼낸 정보로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하씨가 빼낸 개인정보는 90여 건. 이들 중 유부남으로 밝혀진 10여 명을 상대로 협박을 해 모두 5천여만원을 갈취했다. 그는 “애초부터 유부남을 노린 계획적인 범죄였다”며 “역삼동 모텔에서 합숙할 때도 유부남을 위주로 성관계를 가지도록 교육시켰다”고 말했다.
2 대 1 섹스와 같은 변태적인 수법이 동원된 것도 이들 조직의 특징. 경찰측에 따르면 이들은 2 대 1 섹스 등을 통해 상대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올가미를 치는 치밀함도 보였다. 한 사람이 3천만원에 달하는 거액을 뜯기면서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피해자가 추가로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의 물품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1백50여 통의 주민등록등본을 추가로 발견됐다”며 “당사자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일까. 경찰은 이례적으로 원조교제 여학생 3명에 대해 불구속 기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성년자들이 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범행수법이 지나치게 계획적이고 죄질이 나빴다”며 “때문에 원조교제를 한 남성들을 피해자로 분류해 여학생들을 공갈 및 금품갈취 혐의로 입건했다”고 말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