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대구공략작전이 난관에 부딪혔다. 거물급 후보 5명을 핵심지역에 ‘올인’해야 한다는 이상론과 달리 지역구 정리마저 안되는 상황. 사진은 이강철 전 특보(왼쪽)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 ||
그래서 정동영 의장도 지난 2월1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구가 바뀌면 대한민국 정치가 바뀐다”는 말까지 하며 대구 선거의 역사적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중요성을 인식하고 “떨어지더라도 나가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며 대구 출마 후보들을 격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못하다. 먼저 지역 거물급들이 대구 중심부에 ‘올인’을 해 바람을 일으켜야 총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지만 각 후보들이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선뜻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11개 지역구 중 아직 4~5개 지역구에서는 강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를 찾지 못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대구 징발 대상자’로 거론된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당선 가능성이 있는 경북의 경산·청도를 택하려고 하는 것도 대구에서 열린우리당 바람을 일으키는 데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연 열린우리당은 이런 ‘파열음’들을 잠재우고 대구에서 최소 5석(예상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의 대구지역 선거 전략의 앞과 뒤를 짚어 봤다.
“선거는 선거운동 등 조그마한 일도 중요하지만 큰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이해성 홍보수석 등 ‘청와대 7인방’을 만나 총선 출마 격려 차원에서 던진 말이다. 전체 선거판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당락의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인 셈이다. 노 대통령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전체 선거구도를 노장층과 젊은층의 대결로 몰아가 짜릿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지금 이 ‘선거구도’란 말이 열린우리당의 대구지역 선거 준비 과정에서도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열린우리당 신진세력들은 이번 선거에서 조직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거물급 후보들이 핵심 지역에 띠를 형성해 바람몰이를 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결론이 ‘5개 중심지역 올인 전략’이다.
대구 지역의 열린우리당 인사 A씨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 장관에서 물러나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뒤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윤덕홍 전 부총리가 수성 을을 맡고, 대구 지역 선거 전체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태일 영남대 교수가 수성 갑을 맡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왕특보’ 이강철 전 특보가 동구 갑(분구 예상지역), 곧 사퇴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동구 을(분구 예상지역)에서 나선다. 마지막으로 남구에서는 최근 시지부장으로 당선된 이재용 전 남구청장이 유세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구도다. 이렇게 대구 5대 핵심지역에 거물들을 총동원해 벨트를 형성한다면 열린우리당 바람이 대구의 나머지 지역과 경북지역에도 확산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상론’은 현실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먼저 권기홍 노동부 장관의 지역구 교통 정리가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권 장관은 현재의 선거 판세로는 대구 지역에 출마해선 승산이 낮다고 판단, 인근 지역인 경북 경산·청도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열린우리당의 또 다른 인사 B씨는 이에 대해 “주변에서 대구 중심부 출마를 권유했지만 권 장관이 이를 완곡하게 거절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열린우리당 ‘대구5인방’ 중 한 사람인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승산이 낮은 대구 대신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북 경산·청도 출마에 집착하고 있다. | ||
김태일 영남대 교수도 ‘총선 출마 1순위’로 꼽히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고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대구 지역의 대표적 개혁성향 인사로 신망을 받아왔지만 본인이 오래 전부터 총선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둔 상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최근 중앙위원 경선에서 2위를 차지, 정치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아직 총선 출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강철 전 노무현 대통령 특보의 경우도 열린우리당의 ‘대구 바람 일으키기’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 전 특보는 지난 1월29일 열린우리당 외부인사영입단장직을 내던지고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싣고 완전히 대구에 눌러앉았다. 배수의 진을 치고 이번 총선을 준비하는 그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현지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1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계기가 없다면 이 전 특보도 당선을 위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특히 이 전 특보는 대통령의 ‘왕특보’로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지만 이런 ‘후광’이 얼마나 대구 표심을 끌어당길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이 전 특보는 지역구도 관리해야 하고 대구 전체 선거 판도 짜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조율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전 특보가 최근 대구에 내려왔을 때 현지 신진 그룹은 “이번 선거와 관련해 빨리 전략을 짜야 하며, 권기홍 장관의 지역구 이전과 김태일 교수의 출마를 적극 권유하시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전 특보는 이에 대해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우선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선거를 앞두고 당내 신진 세력들과 지도부 사이에 시각차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신진 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거물급들이 모두 대구 핵심지역에서 올인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지도부는 이를 두고 “실현 가능성이 적은 이상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진세력의 이상론에 심정적으로는 동의를 하지만 각 후보들이 처한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그들의 ‘올인’ 전략이 탄력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고민은 또 있다. 대구 현지에서 바람이 일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만약 한나라당의 물갈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더 어려운 선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부산 총선 후보 공개토론회를 통해 33세의 김희정 부대변인을 공천하는 등 ‘혁명적’인 물갈이를 하자 열린우리당은 내심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대구 지역에서도 ‘현역’들을 거의 공천하지 않고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 이명규 전 북구청장 등 신진인사들을 대거 이번 총선에 투입한다면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의 바람이 분다고 하더라도 승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대구 공략에 나선 열린우리당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당 상층부의 ‘옥쇄론’과 ‘올인 전략’에도 불구하고 선뜻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이들이 적은 데다 각 후보들의 상황 인식도 달라 바람몰이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또한 현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혁명적 물갈이가 이뤄질 경우 열린우리당이 지역구도 타파의 상징으로 삼은 ‘TK 상륙작전’에도 적잖은 타격이 올 전망이다. 과연 오는 4월15일 대구에서 열린우리당은 어떤 모습으로 ‘찬가’를 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