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NC의 불펜진 홍성용(위)과 김진성. 이들은 아직 20대이지만 야구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사진제공=NC다이노스
“LG 2군에서 홍성용은 야구 빼놓고 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러닝, 웨이트트레이닝, 근력운동, 하체운동 등 모든 부문에서 1위였다. 그런데 야구만 못했다.”
결국 2008년 10월 LG에서 방출된 후 홍성용은 일본 독립리그로 눈을 돌리게 된다. 월 200만 원씩 받는 일본 야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LG 입단 동기이자 똑같이 방출 신세였던 박가람의 제안 때문이었다. 곧장 일본으로 건너간 후 독립리그에서 좌절과 희망의 널뛰기를 하고 있던 즈음에 2012 시즌 중반, 한국의 SBS ESPN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나는 투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박노준, 박찬호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다른 유망주들과 대결을 벌일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박찬호 선배님이 나오신다는 얘기에 고민도 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찬호 선배님 앞에서 공을 던져보고 평가받는 게 소원이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냈던 홍성용은 박찬호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박찬호는 “다른 참가자들과 수준 차이가 크게 난다”면서 프로팀과의 연결에 앞장서주겠다는 얘기도 전했다. 그런데 그 무렵 NC다이노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건 기막힌 우연이었다. 이미 홍성용의 일본 독립리그 성적을 훤히 꿰고 있던 NC다이노스는 홍성용에게 테스트를 제안했고, 홍성용은 경남 진주로 내려가 NC다이노스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테스트를 치렀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공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어머님을 모시고 갔던 건데,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바로 다음날 NC다이노스와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다.”
NC다이노스 입단 후 홍성용은 마산에서 박찬호와 조우했다. 박찬호가 김경문 감독을 만나기 위해 마산야구장을 찾은 것이다. 홍성용을 발견한 박찬호는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하며 후배의 기를 살려줬다고 한다. “미스터 홍! 잘하고 있나? 프로 유니폼을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 앞으로 기대 많이 할 테니까 열심히 해라.”
홍성용은 올 시즌 첫 등판인 11일 LG전에서 10-1로 앞선 9회 1이닝을 볼넷 하나만 내주고 실점 없이 끝냈다. 이어 13일 LG전에서도 ⅔이닝, 15일 롯데전에서도 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4경기에서 13타자를 상대해 피안타 1개만 기록하며 성공적인 프로 1군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SBS ESPN ‘나는 투수다’에 출연한 홍성용.
김진성은 2004년 SK에 입단했다가 2006년 방출당했고, 3년 후인 2009년 넥센으로 이적한 후에는 2011년 또다시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 고등학교 때 입은 팔꿈치 부상이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고 결국 SK 시절 수술을 했지만, 쉽게 회복되지 못했던 부분이 그의 야구인생을 암흑으로 내몰았다.
“SK에서 나와 넥센에 들어가기까지 3년의 공백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재활 훈련을 받으려면 한 달에 50만 원의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이 없어서 트레이너와의 훈련을 포기하고 동네 헬스클럽에서 재활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김진성은 돈을 벌기 위해 웨이터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토로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쇠하셨고, 더 이상 손을 벌릴 만한 형편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랬던 그가 2011년 가을 트라이아웃을 통해 신생팀 NC에 입단한 것은 ‘기적’이었다. 더욱이 김경문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작용하게 된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김진성. 부모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할머니에게 유독 못 되게 굴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 그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효도했던 일이 SK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들어갔을 때라고 회상한다. 물론 그 기쁨은 방출이라는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김진성의 좌우명은 ‘아프지 말자’다. 수술로 인해 야구를 포기할 뻔했던 그로선 ‘부상’이란 단어가 영원히 자신과는 인연을 맺지 않기를 바란다.
“NC 유니폼을 입으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소원이 있었다. 내가 1군 마운드에 서는 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경기장으로 초대해 손자의 경기를 직접 보여드리는 일이었다. 이젠 그 소원을 달성했다. 그리고 난 프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반짝 선수가 아닌 꾸준히 성장해가는 진정한 투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